[목멱칼럼]노화는 못 막아도 노쇠는 되돌릴 수 있다

사회

이데일리,

2026년 6월 17일, 오전 10:08

[최희정 웰에이징연구소 대표]당신은 몇 살까지 살고 싶은가.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몇 살까지 건강하게 살고 싶은가. 오래 사는 것과 건강하게 잘 사는 것은 다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 예방보다 돌봄에 더 많은 자원이 집중되는 것이 현실이다. 순서가 바뀌어야 한다.

건강수명 18년의 격차는 노쇠 예방에서 시작한다. 국가데이터처가 2025년 말 발표한 ‘2024년 생명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3.7년에 달한다. 반면 질병이나 사고 없이 독립적으로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유병기간 제외 기대수명’, 이른바 건강수명은 65.5년에 그친다. 그 격차인 약 18년이라는 긴 세월을 우리는 병상에 누워 고통받거나 누군가의 돌봄에 의지해 보낸다는 뜻이다. 100세 시대가 일상이 되었다지만 생애 5분의 1을 아프게 맞이하는 장수가 과연 축복인지 다시 물어야 한다.

국가 재정 차원에서도 이 문제는 절박하다. 보건복지부 ‘2026년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사업안내’가 인용한 건강보험 진료비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진료비는 2018년 31.8조원에서 2022년 45.7조원으로 폭증했고 2024년에는 50조원을 넘어섰다. 전체 건강보험 진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0%를 넘어선 상태다. 65세 이상 인구가 매년 50만 명씩 늘어나는 지금 이 속도는 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 같은 자료는 이러한 흐름을 두고 ‘고비용 돌봄 진입 예방을 위한 예방적 돌봄 강화 필요’라는 정책 과제로 직접 명시하고 있다. 필요성은 이미 인지하고 있다. 남은 것은 실행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막아야 하는가. 핵심 개념이 노쇠(Frail·프레일) 다. 노인 의학에서 노쇠는 자연스러운 노화와 다르다. 신체 기능과 면역력이 극도로 취약해져 작은 충격에도 쉽게 장애를 입거나 요양시설, 병원으로 직행하기 직전의 단계를 말한다. 경희대 원장원 교수 연구팀의 한국노인노쇠코호트(KFACS) 분석에 따르면 인지 노쇠 단계의 노인 상당수가 5년 내 치매로 진행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장기요양시설 입소 위험도 정상 노인보다 약 5~6배 높다는 것이 국내외 연구의 공통된 결론이다. 중요한 점은 노화는 막을 수 없지만 노쇠는 다르다는 사실이다. 6~12개월간 운동을 포함한 복합 중재를 시행했을 때 노쇠 지표와 신체 기능이 의미 있게 개선되며 특히 노쇠 전 단계에서는 정상 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 가역성이 가장 크다. 일찍 개입할수록 효과가 크다는 뜻이다.

이 사실을 정책으로 먼저 체계화한 것이 일본이다. 2000년 개호보험 도입 이후 서비스 비용이 급격히 팽창해 재정 위기에 직면하자 2005년 개호보험법을 개정해 노쇠 예방 시스템 구축을 본격화했다. 돌봄 수요 자체를 줄이지 않으면 제도가 지속되지 않는다는 판단이었다. 도쿄대학 고령사회종합연구기구(IOG)는 영양·운동·사회참가를 아우르는 ‘프레일 체크’ 활동을 개발해 전국에 확산했고 고령 주민 스스로가 ‘프레일 서포터’로 나서서 이웃을 돕는 주민 주체형 모델로 자리잡았다. 동네 곳곳의 정기 모임 공간에서 체조·영양·구강 관리·대화를 함께하며 피로감·체중 감소·의욕 저하 같은 노쇠 초기 신호를 조기에 포착한다. 병원이 아니라 동네에서 치료가 아니라 예방이 이뤄지는 구조다.

제도가 바뀌면 시장도 바뀐다. 일본에서 예방 중심의 돌봄 정책이 자리 잡고 시설 인정 요건이 강화하면서 민간 시니어 주거 시장에도 변화의 압력이 가해졌다. 시니어 주거 시설들이 단순한 ‘돌봄 공간’에서 ‘건강하게 나이 드는 거점’으로 역할을 재정의하기 시작했다. 규칙적 운동, 영양 관리, 사회적 관계 유지가 일상이 되는 생활 환경 자체가 노쇠 예방 인프라가 된다. 건강할 때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이런 환경으로 옮기는 것이 뒤늦게 요양시설을 찾는 것보다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시니어타운에 일찍 입주하는 것은 노후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전략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노쇠 예방형 시니어 주거의 운영 표준(규칙적 운동 프로그램, 영양·구강 모니터링, 사회적 활동 유도)을 제도화하고 이를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도록 공시체계로 뒷받침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소비자가 ‘건강하게 나이 들 수 있는 집’을 선택할 수 있어야 시장도 그 방향으로 움직인다.

동네마다 노인들이 규칙적으로 모일 수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 걷기 좋은 보행 환경을 조성하는 일, 영양 교육과 구강 검진을 생활 가까이에 두는 일. 이 모든 것이 예방 인프라다. 지방정부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다. 중앙정부 역시 노쇠 예방을 건강보험·장기요양보험·주거정책을 관통하는 공통 의제로 설계하고 예방적 돌봄에 대한 수가와 인센티브 구조를 정비할 시점이다. 중앙의 제도 설계와 지방의 생활권 실행, 민간의 운영 표준이 맞물릴 때 노쇠 예방은 구호를 넘어 시스템으로 자리 잡는다. 건강수명을 늘리는 것, 그것이 개인에게는 진정한 장수이고 국가에는 사회보장비 부담을 억제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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