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거기까지였다. 드라마와 달리 교육 현실은 답답하다. 학교폭력, 도박, 마약만이 아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야박한 에피소드도 한둘이 아니다. 초품아에 위치한 초등학생 운동회는 매년 소음 민원에 시달린다. 추억의 소풍과 수학여행은 과도한 책임 탓에 교사들이 거부할 정도다. 스승의날에는 많은 학교들이 휴교를 선택한다. 최근에는 북중미 월드컵 시청을 두고 수업권 침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고 한다.
교육은 모든 국민이 이해당사자이자 전문가다. 누구라도 한마디씩은 할 수 있다. 현실은 복잡다단하다. 어떤 정책을 선택해도 제로섬 게임이었다. 정책의 사각지대도 한둘이 아니다. 그야말로 백방이 무효였다. 역대 정부가 모두 실패했다. 예전에는 부족한 교육예산이라는 핑계도 있었지만 요즘은 ‘초중고는 돈잔치·대학은 고사위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교육교부금이 풍년이라고 한다.
따져보면 우리 교육은 정말 이상하다.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해소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라는 체념만이 가득하다. 거칠게 이야기하면 집단적 자포자기 상태다. △교실붕괴 △교권추락 △입시교육 △사교육비 △교육격차 △학벌주의 등등. 아무도 해법을 추구하지 않는다. 다들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도 교육은 현 대한민국의 원동력이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60·70년대 ‘우골탑(牛骨塔)’이나 2000년대 이후 ‘기러기아빠’라는 표현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교육에 진심인지를 보여주는 단어다. 이는 MZ세대 학부모 역시 다를 바 없다. 대한민국이 원유나 천연가스 등 변변한 지하자원 하나 없이 성장하고 발전해온 이유다. 대한민국은 사람이라는 인적자원 하나로 겨우 생존했다. 그게 교육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고, 미래도 그럴 것이다.
한국 사회의 역동성은 ‘교육’이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해온 교육이 무너지면 미래도 없다. 교육은 흔히 백년대계(百年大計)라고 부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서두를 것 없다.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의 주요 장치인 교권보호국이 정말 필요없는 현실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출발해보자.
사족으로 교육감 선거를 좀 어떻게 할 수 없을까. 진보든 보수든 단일후보 이야기뿐이다. 누가 누군지도 모르고 투표했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나도 그랬고 주변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언제까지 깜깜이 선거를 해야 하나. 교육의 정치적 중립은 냉정하게 말하면 ‘눈 가리고 아옹’이다. 대통령이 임명하거나 시도지사와 러닝메이트제로 하는 게 차라리 솔직하지 않나. 답답해서 덧붙여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