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땅은 '플라스틱 섬'…'버려진 것들의 섬'이 던진 질문 [황덕현의 기후 한 편]

사회

뉴스1,

2026년 6월 20일, 오전 07:30

이탈리아 영화 '버려진 것들의 섬'(환경재단 제공) © 뉴스1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영화 '워터월드'는 빙하가 녹아 육지가 사라진 미래를 그렸다. 사람들은 바다 위에 떠다니는 구조물에서 살고, 마지막 남은 땅을 찾아 헤맨다. 당시엔 과한 '종말의 상상'처럼 보였지만, 해수면의 상승 가속과 해양 오염이 현실이 된 지금은 마냥 허황한 이야기로만 보이지 않는다.

이탈리아 영화 '버려진 것들의 섬'(Wasted)은 그 상상을 더 좁고 날카롭게 밀어붙인다. 영화는 땅을 모두 잃은 바다 한가운데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대신 쓰레기로 이뤄진 섬 '트래시아펠라고'(Trashipelago)가 있다. 세계가 버린 물건들이 흘러와 쌓인 곳이다. '워터월드'에서는 사람들이 찾던 마지막 땅(흙)이 희망이었다면, '버려진 것들의 섬'에서 마지막 땅은 플라스틱과 폐기물이다.

난파선(혹은 '난파섬')의 주인은 세상에서 쓸모없다고 여겨진 것들이 흘러들어왔고, 그걸 얼기설기 엮어 섬을 만들었다. 거기서 '기후 피난민'을 구조하고, 생존법을 가르친다. 이 작품에 '최우수 기업영화상'을 준 이탈리아 필름임프레사 영화제는 '바다 위 폐기물 섬에 도착한 젊은 난파자가 회수 재료를 다시 쓰며 살아가는 우화'라고 표현했다.

겉으로 보면 영화는 자원순환 이야기다. 버려진 것을 다시 쓰고, 쓸모없다고 여겨진 것에서 새로운 기능을 찾는다. 늙은 난파선의 지혜는 마치 순환 경제의 은유처럼 보인다. 버리지 않고 다시 쓰면 살 수 있다는 메시지다.

그러나 결말은 단순한 희망으로 닫히지 않는다. 마지막에 여자를 건져 올린 뒤 트래시아펠라고의 원래 주인은 사라지고, 난파선에서 구조된 젊은 남자가 새 주인처럼 남는다. 쓰레기 섬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곳에 적응해야 하는 사람만 바뀐다.

결국 영화가 말하는 순환은, 그래서 밝지만은 않다. 버려진 것을 다시 쓰는 지혜가 필요하지만, 계속 버리는 세계가 바뀌지 않는 한 쓰레기 섬은 누군가에게 다시 떠넘겨진다.

현실도 다르지 않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2022년 플라스틱 오염을 끝내기 위한 국제법적 구속력 있는 협약을 만들기로 했다. 협약은 해양 플라스틱뿐 아니라 생산, 설계, 폐기까지 플라스틱의 전 생애주기를 다루는 방식으로 추진됐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각국은 플라스틱 오염이 심각하다는 데는 동의했지만, 얼마나 줄일지에는 합의하지 못했다.

부산에서 열린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1)는 합의 없이 끝났고, 지난해 8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이어진 INC-5.2도 결론을 내지 못했다.

쟁점은 분명했다. 플라스틱 생산 자체를 줄일 것인지, 아니면 재활용과 폐기물 관리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다. 100개국 이상은 생산 감축과 유해 화학물질 규제를 포함한 강한 협약을 원했지만, 산유국과 석유화학 생산국은 생산 제한에 반대했다.

감축 목표도 한때 제시됐다. 르완다와 페루는 2040년까지 2025년 기준 1차 플라스틱 폴리머 생산을 40% 줄이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 역시 최종 합의로 이어지지 못했다. 세계는 쓰레기 섬이 커지는 걸 보면서도, 새 플라스틱을 얼마나 덜 만들지 아직 약속하지 못한 셈이다.

숫자는 이미 위험을 말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별도 조치가 없을 경우 플라스틱 사용과 폐기물이 2060년까지 3배로 늘 수 있다고 전망했다. 환경으로 새어 나가는 플라스틱은 2019년 2200만 톤에서 2060년 4400만 톤으로 늘고, 강과 호수, 바다 등 수계로 흘러드는 플라스틱은 2019년 610만 톤에서 2060년 1160만 톤으로 증가할 수 있다고 봤다. 2060년까지 수계에 축적되는 플라스틱은 4억 9300만 톤, 바다에 쌓이는 양은 1억 4500만 톤에 이를 수 있다.

더 나은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OECD는 강한 국제 정책이 도입될 경우 플라스틱 사용과 폐기물을 기준 전망보다 3분의 1 줄이고, 환경 유출을 85%까지 낮출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 전망은 어디까지나 강한 정책이 있을 때의 이야기다. 합의가 미뤄지면 트래시아펠라고가 생길 가능성은 계속 커진다.

'버려진 것들의 섬'은 이 점에서 순환경제 홍보물인 동시에 경고문이다. 영화는 버려진 것을 다시 쓰는 능력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하지만 그 능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계속 버리는 사회가 그대로라면, 재사용은 구조를 바꾸는 해법이 아니라 쓰레기 섬에서 살아남는 생존술이 된다.

다만 이 영화는 기업이 후원·제작했다는 점도 이중적이다. 이 영화는 크라이슬러·지프·푸조·마세라티·알파 로메오 등을 소유한 자동차 그룹 스텔란티스가 제작했다. 스텔란티스는 이 작품을 통해 회수 재료의 재사용과 환경 보호 메시지를 냈다. 그러나 자동차 산업 역시 플라스틱, 금속, 배터리 원료, 에너지 소비에서 자유롭지 않다. 기업의 친환경 마케팅은 그래서 늘 질문을 동반한다.

그래도 이 영화가 던지는 장면은 남는다. 바다 위 마지막 땅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세계. 그곳에서 사람은 쓰레기를 다시 쓰는 법을 배우지만, 정작 쓰레기가 계속 흘러오는 이유는 바꾸지 못한다. 국제 플라스틱 협약도 같은 자리에 서 있다. 다시 쓰자는 말은 많지만, 얼마나 덜 만들 것인지에 대한 약속은 아직 비어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쓰레기 섬에 적응하는 기술이 아니라, 그 섬을 더 키우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황덕현 경제부 기후환경전문기자 © 뉴스1


ac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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