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은 끝났는데, 보증금은 새 주인에게[판례방]

사회

이데일리,

2026년 6월 20일, 오후 01:55

[하희봉 로피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상가를 빌려 장사하던 사람이 있다. 임대차 기간이 끝났지만 보증금은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그 사이 건물의 주인이 바뀌었다. 그것도 재건축조합이 신탁을 원인으로 소유권을 넘겨받았다. 이제 보증금은 누구에게 받아야 할까. 떠나간 옛 주인인가, 새로 주인이 된 조합인가.

(사진=나노바나나)
대법원은 새 소유자가 임대인의 지위를 그대로 승계한다고 보았다. 임대차 기간이 이미 끝났더라도 마찬가지다.

임차인은 2017년 점포를 빌리면서 전 임차인에게 권리금 1,000만 원을 주었고, 임대차는 2021년 말까지로 갱신됐다. 한편 이 점포가 있는 구역은 재건축 정비구역이었다. 조합은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받고 이주 절차를 밟았다. 조합은 임차인이 아니라 종전 임대인을 상대로 점포 인도 소송을 내 이겼고, 그 판결로 2022년 4월 점포를 비웠다. 그리고 조합은 같은 해 1월 신탁을 원인으로 점포의 소유권등기를 마친 상태였다.

원심은 임차인의 보증금 반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임대차가 기간 만료로 끝난 이상, 뒤늦게 건물을 넘겨받은 조합은 임대인 지위를 이어받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임차인이 대항력(임차권을 새 소유자에게도 주장할 수 있는 힘)을 갖췄는지는 따지지도 않았다.

대법원의 판단은 정반대였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두 조항을 맞물려 둔다. 하나는 임대차가 끝나도 임차인이 보증금을 돌려받을 때까지는 임대차 관계가 존속하는 것으로 본다는 규정이다(제9조 제2항). 다른 하나는 임차건물의 양수인은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한 것으로 본다는 규정이다(제3조 제2항). 두 조항을 이으면 답이 나온다. 기간이 끝났어도 보증금이 남아 있으면 임대차는 살아 있고, 그 상태에서 건물이 넘어가면 새 소유자가 임대인 자리를 당연히 승계한다. 새 소유자는 보증금 반환 채무까지 떠안고, 옛 주인은 그 채무에서 벗어난다. 원심은 이 법리를 놓쳤고, 대법원은 보증금 반환 부분을 깨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흔한 오해 하나를 정리한 판결이다. 계약서에 적힌 만료일이 지나면 임대차가 완전히 끝났다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보증금이라는 돈이 묶여 있는 한, 법은 임대차를 끝난 것으로 보지 않는다. 건물을 산 사람은 벽돌과 땅만 산 것이 아니라, 그 건물에 얽힌 정산되지 않은 임대차까지 함께 떠안는다. 소유권을 넘겨받은 것이 매매든 경매든, 이 사건처럼 신탁이든 결론은 같다.

다만 한 가지 단서가 있다. 대법원이 곧바로 조합에게 보증금을 내주라고 못 박은 것은 아니다. 임차인이 대항력을 갖췄는지, 즉 점포를 넘겨받아 사업자등록까지 마쳐 두었는지를 환송 후 다시 따져야 한다. 그 요건이 확인돼야 비로소 새 소유자에게 보증금을 청구할 수 있다.

이 판결에는 임차인에게 아쉬운 대목도 있다. 임차인은 조합이 권리금을 회수할 기회를 막았다며 손해배상도 함께 청구했지만, 이 부분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건축 사업이 관리처분계획 인가와 이주 절차까지 상당히 진행됐고 임대차계약에도 이주기간에 점포를 비우기로 한 특약이 있었던 점에 비춰, 조합이 권리금 회수를 방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였다. 보증금 반환 책임은 새 주인에게 그대로 넘어가지만, 권리금까지 같은 논리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세입자에게 이 판결은 든든한 안전장치다. 보증금을 받지 못한 채 건물주가 바뀌어 막막했다면,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보증금을 다 돌려받기 전까지는 함부로 가게를 비우지 말고 대항력을 지켜 두는 것이다. 점포의 점유와 사업자등록을 유지하면, 주인이 누구로 바뀌든 새 주인에게 보증금을 청구할 수 있다.

반대로 건물이나 상가를 사들이는 쪽은 긴장해야 한다. 등기사항증명서에는 보증금 채무가 적혀 있지 않다. 경매로 싸게 낙찰받았든, 신탁이나 재건축으로 소유권을 넘겨받았든, 눈에 보이지 않던 보증금 반환 의무가 따라붙을 수 있다. 건물을 넘겨받기 전에 안에 누가 들어 있는지, 돌려주지 않은 보증금은 없는지 확인하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다.

임대차의 끝은 계약서의 만료일이 아니다. 보증금이 임차인의 손에 돌아오는 날까지 임대차는 살아 있다.

■하희봉 변호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학과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4회 변호사시험 △특허청 특허심판원 국선대리인 △(현)대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 국선변호인 △(현)서울고등법원 국선대리인 △(현)대한변호사협회 이사 △(현)로피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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