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철 연세암병원 완화의료센터 교수. (사진=연세암병원)
“이제는 삶을 정리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박중철 연세암병원 완화의료센터 교수는 치료를 시작하는 의사가 아니라 치료를 멈춰야 하는 순간 환자와 가족을 만나는 의사다.
그는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설명하고 연명의료계획서를 함께 작성하며 환자가 삶의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다.
환자와 가족에게 그는 종종 희망을 포기하라고 말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는 병원에서 거의 문전박대를 받는 의사라며 환자 가족에게 “우리 엄마 죽게 하려는 거냐”, “끝까지 치료해 달라”, “병원에 소송을 걸겠다”는 말을 듣는 일도 드물지 않다고 했다.
박 교수가 설명하는 것은 더 이상의 치료가 아니라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다.
연명의료계획서는 말기 환자나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담당 의사와 상의해 자신의 연명의료 의사를 남기는 문서다. 반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 성인이 건강할 때 미리 자신의 뜻을 남기는 제도다.
만약 환자가 의사를 표현할 수 없고 두 문서가 모두 없는 경우에는 가족 2명 이상의 진술과 합의를 통해 연명의료 여부가 결정된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 현황. (사진=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하지만 박 교수는 제도가 마련됐다고 해서 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환자가 생전에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혀도 막상 임종의 순간이 되면 가족들이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했다.
환자의 뜻을 존중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끝까지 치료를 요구하는 가족 앞에서 의료진 역시 그 갈등을 외면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런 대화는 충분한 시간을 필요로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대학병원 외래에서는 오전 수십 명의 환자를 진료하다 보니 말기 진단과 삶의 마지막에 대한 설명이 2~3분 만에 끝나는 일도 반복된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84.1%는 회복 가능성이 없을 경우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지만 실제 자신의 뜻이 반영된 비율은 16.7%에 그쳤다.
박 교수는 그 간극 끝에서 더 긴 치료와 더 긴 고통을 본다고 했다. 치료 효과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도 산소와 영양 공급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처치가 이어지고 환자들은 삶을 정리할 시간을 잃는다.
그는 “호스피스는 사람을 살리는 곳이 아니라 지옥 같은 시간을 견디는 사람을 그곳에서 꺼내주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많은 환자와 가족은 호스피스를 죽음을 기다리는 곳으로 받아들인다.
마지막 순간까지 다른 치료법과 더 큰 병원을 찾아다니는 이유도 결국 버려진다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했다. 환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보다 치료가 끝났다는 사실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생성한 AI이미지로 실제 인물 및 장소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챗gp)
“우리는 죽음을 사유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삶의 마지막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보다 끝까지 기적을 기대하도록 만드는 사회에서 살아왔다고 말했다.
드라마와 영화에는 난치병 환자가 끝내 살아남고 불가능을 극복하는 이야기가 넘쳐나지만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이야기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과거에는 상황이 달랐다. 박 교수는 “예전에는 사람이 집에서 죽음을 맞았고 가족과 공동체가 삶의 마지막을 함께 준비했다. 그런데 도시화와 핵가족화로 병원이 죽음의 장소가 됐다”고 말했다.
통계청 자료를 인용한 연구에 따르면 2021년 국내 사망자의 74.8%는 의료기관에서 생을 마감했고 집에서 사망한 비율은 16.5%에 그쳤다. 삶의 마지막이 가족과 공동체의 공간에서 병원으로 옮겨온 셈이다.
박 교수는 병원이 삶을 연장하는 공간이 된 것은 분명한 성과지만 그만큼 죽음도 우리의 일상에서 멀어졌다고 말했다.
삶의 마지막을 가족과 함께 준비하기보다 병원에 맡기는 사회가 되면서 죽음을 이야기하고 준비하는 문화 역시 점차 사라졌다는 것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설명하는 보건복지부 카드뉴스. (사진=보건복지부)
그는 부모님과 삶의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며 언젠가 자신에게도 같은 선택의 순간이 찾아온다면 가족들이 자신의 뜻을 알고 존중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수많은 환자의 마지막을 지켜본 박 교수는 스스로를 “모든 죽음의 목격자”라며 “목격자는 증언해야 한다”고 표현했다.
그는 의료진이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사람을 넘어 마지막 길을 안내하는 안내자이자 환자의 존엄을 지키는 파수꾼, 그리고 죽음을 사회에 증언하는 목격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가 지나간 뒤에도 현장에 남아 있는 사람들, 사건과 사회 변화의 한가운데서 이를 가장 가까이 지켜본 사람들의 시선으로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