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지적장애인으로 인정합니다"…장애인 원고위해 쉬운 판결 쓴 법원

사회

이데일리,

2026년 6월 29일, 오전 11:31

[이데일리 최오현 기자] 서울행정법원이 ‘한국형 사회법원’ 모델 추진 이후 사회보장 사건을 전담하는 전문합의부에서 처음으로 ‘이지리드(Easy-Read·이해하기 쉬운)’ 판결문을 선고했다. 장애인인 원고가 판결을 이해하기 쉽도록 그림과 쉬운 문장으로 쓰인 판결문을 첨부한 것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재판장 강우찬)은 지난 25일 지적장애인 A씨가 양천구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장애정도 미해당 결정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사진은 이지리드 판결문 중 일부.(사진=서울행정법원)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재판장 강우찬)은 지난 25일 지적장애인 A씨가 양천구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장애정도 미해당 결정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사진은 이지리드 판결문 중 일부.(사진=서울행정법원)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재판장 강우찬)는 지난 25일 지적장애인 A씨가 양천구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장애정도 미해당 결정처분 취소 소송에서 A씨의 손을 들어줬다.

A씨는 2023년 11월 지적장애 등록을 신청했으나 구청으로부터 ‘장애 정도 미해당’ 결정을 받았다. 최근 수년간 세 차례 지능검사에서 IQ 70 미만 판정을 받고 복수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부터 지적장애 진단을 받았지만, 구청은 A씨가 검사에 소극적인 태도와 어린 시절 IQ가 70을 넘었던 점 등을 이유로 장애 등록을 거부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구청의 판단에 잘못이 있다며 해당 처분을 취소했다. 장기간 A씨를 진료한 전문의들의 판단과 반복된 검사 결과에 따르면 A씨의 지적장애를 인정할 수 있고 A씨가 어린 시절부터 시설에서 생활하고 장기간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등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아왔다는 점, 재판부가 법정에서 직접 심문해 관찰한 결과 등을 종합해 지적장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재판부는 지적장애 여부는 단순히 IQ 수치만이 아니라 실제 사회생활 제약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며 장애의 ‘사회적 모델’을 반영한 전향적인 해석을 제시했다. 장애를 바라보는 법적 해석에서도 기존의 의료적 접근을 넘어 사회적 모델을 적극 반영한 것이다. 그러면서 A씨가 스스로 식사를 준비해 본 적이 없고, 뇌전증 약물을 제때 챙겨먹지 못하며, 대중교통 이용이나 행정업무 처리 등을 해본 경험이 전혀없다는 점 등에서 기본적이고 독립적인 사회생활 능력에 제약이 상당하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원고는 지적능력 및 적응기능의 제한으로 인해 자신의 일을 처리하고 사회생활에 적응하는데 상당한 곤란을 겪고 있는 사람으로 봄이 타당하다”며 “장애인복지법령이 지적장애인을 별도의 장애유형으로 규정한 취지는 단순히 지능지수 수치에 따라 혹은 후천적으로 특정한 뇌질환이 존재하는지 여부에 따라 지적장애인인지 여부를 엄격히 가려내는 데 있다기보다, 실제 생활기능과 사회적응능력이 현저한 떨어져 지속적인 보호와 지원이 필요한 사람을 발견해 필요한 복지적 지원을 제공하고자 하는데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설시했다.

이번 판결문은 서울행정법원이 한국형 사회법원 모델 추진 후 처음으로 쓰여진 쉬운 판결문이자, 2026년 대법원의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 사법지원 예규’에 따라 이해하기 쉬운 판결문이 처음 제공된 것이다. 재판부는 원고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그림 등도 활용했다. 판결문에는 “재판을 낸 원고 A씨가 이겼습니다”, “법원은 당신을 지적장애인으로 인정합니다”, “법원은 구청의 결정이 틀렸다고 판단합니다”, “구청의 결정은 사라집니다” 같은 5장의 쉬운 문장의 판결문이 함께 첨부됐다.

한편 서울행정법원은 앞서 ‘한국형 사회법원’ 모델을 추진하며 장애인, 임산부, 아동, 기초수급자와 관련된 사회보장사건을 전문 합의부에서 처리하도록 했다.

서울행정법원 전경. (사진=백주아 기자)
서울행정법원 전경. (사진=백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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