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지은 기자] 지나치게 높게 설정된 어린이 보호구역 내 교통사고의 형량 하한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음주측정거부죄의 형량은 음주운전 최고 유형 수준으로 상향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와 함께 교통범죄 양형정책도 약물운전과 고령자 운전, 자율주행차 등 환경 변화에 맞춰 ‘정밀과 예방’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양형위원회 산하 양형연구회는 29일 서초구 대법원 대강당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교통범죄와 양형' 제16차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사진=양형위원회 제공)
이날 심포지엄 제1세션 발표자로 나선 장지웅 수원지법·수원가정법원 안산지원 판사는 이른바 ‘민식이법’에 대해 처벌의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2019년 충남 아산의 스쿨존에서 당시 7세였던 김민식군이 교통사고로 숨진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법으로, 이에 따르면 스쿨존 내 어린이 사망 사고를 냈을 때 운전자는 최대 무기징역까지 가중처벌받을 수 있다.
장 판사는 “어린이 교통사고 범죄는 어린이의 생명·신체를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하지만, 경미한 주의의무 위반의 경우까지 포함하는 순수한 과실범으로서 행위불법이 미약한 경우를 배제할 수 없다”며 “현행 형량범위는 특히 하한이 다소 높게 설정되어 있으므로 개별 사건의 책임 정도를 보다 충실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형량범위를 합리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고 유연한 양형의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토론자로 나선 이승준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개별 사건의 구체적 사실관계와 다양한 주의의무 위반양태에 따른 행위불법을 반영할 필요가 있으므로 최소한 기본영역의 하한을 하향해 주의의무 위반의 다양성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며 동조했다.
신헌섭 부산지방검찰청 부부장검사는 “어린이 보호구역에서는 운전자가 통상의 경우보다 더욱 강화된 주의의무를 부담한다고 볼 수 있다”며 “양형기준을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과정에서 운전자의 주의의무 위반 정도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양형 결론을 도출할 필요성이 있다”고 짚었다.
하나의 사고로 여러 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상상적 경합’ 사건에 대한 명확한 양형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장 판사는 “하나의 교통사고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경우 각 교통사고 범죄가 상상적 경합범인 점을 기본범죄의 특별가중인자로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교통범죄 전반에 적용되는 상상적 경합범의 처리기준을 세워 사각지대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신 검사는 “다수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교통사고의 경우 행위에 대한 비난가능성뿐만 아니라 결과에 대한 비난가능성 역시 반드시 중요하게 고려하여야 할 요소이므로 형량범위의 상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힘을 실었다.
반면 이은미 서울동부지방법원 국선전담변호사는 “피해자가 다수인 사건의 경우 현실적으로 감경 영역으로 진입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어 이를 고려해 이미 양형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며 “행위가 여럿인 실체적 경합범과는 범죄에너지가 다르다는 점 및 교통범죄가 과실범이라는 점 등의 특성에 비춰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음주운전과 음주측정거부 처벌의 형평성도 주요 주제였다. 장 판사는 “현행 양형기준은 교통사고에서의 음주·무면허운전을 양형인자가 아닌 다수범죄로 취급하도록 함으로써 오히려 형량범위의 상승 폭이 제한되는 문제가 있으므로 음주·무면허운전을 교통사고 범죄의 특별가중인자로 취급하는 방식으로 이를 시정함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음주측정거부의 형량범위가 지나치게 낮게 설정되어 있으므로 음주운전 중 가장 무거운 유형의 형량범위에 준하여 상향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음주측정거부는 단순한 행정상 의무 불이행이 아니라 중대한 사법방해범죄에 해당한다”면서도 음주운전을 특별가중인자로 둘 경우 양형기준의 체계 정합성이나 이중평가의 문제를 살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변호사는 “일반 음주운전 및 음주측정거부·방해죄에 관하여 동종 경합범으로 기소된 경우 동종 경합범과 동종 재범을 동일 선상에 두고 볼 수 없다”며 불리한 양형인자 적용에 신중해야 한다고 짚었다.
양형위원회 산하 양형연구회는 29일 서초구 대법원 대강당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교통범죄와 양형' 제16차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사진=양형위원회 제공)
발표자인 류부곤 경찰대학 법학과 교수는 △의료 목적 처방약과 불법 마약 구별 △고령자 운전의 객관적 위험성 평가 △자율주행차 제조사와 시스템 운영자 등 책임 분배 등을 언급하며 “교통범죄 양형정책은 단순한 엄벌주의에서 벗어나 엄벌화에서 정밀화로, 응보에서 예방으로, 행위자 단독 책임에서 사회구조적 책임 분배로 패러다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토론자로 나선 소준섭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판사는 최근 도로교통법 개정으로 처벌이 강화된 약물운전의 양형기준 신설 필요성에는 적극 공감했다. 다만 “의료 목적의 처방약 복용과 불법 마약류 투약 등 행위의 유형과 위험성이 다양한 만큼 음주운전 기준을 그대로 준용하기보다 세밀한 기준을 단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박준석 서울중앙지검 검사는 “양형기준은 법관의 양형 판단을 위한 기준에 그치지 않고 사회 구성원과 기업의 안전관리 및 준법경영을 유도하는 규범적 기능도 수행한다”라며 자율주행차 양형기준의 선제적 검토를 요구했다.
김자봉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교통범죄가 처음부터 통일된 위험도 척도에 기초한 다층적 양형기준으로 설계되어 있다면, 하나의 통일된 틀 안에서 양형의 출발점을 재조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