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밥 3년이면 결혼했는데"…월 200만 저임금에 결혼·출산 꿈 지웠다

사회

이데일리,

2026년 6월 30일, 오전 05:32

[이데일리 양지윤 기자] “조선소에서 3년만 일하면 결혼도 하고 집도 살 수 있었는데…”

최근 인터넷 카페 ‘거사모’(거제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는 과거 조선업 호황기를 기억하는 이들의 한숨 섞인 글이 종종 올라온다. “일자리는 조선소밖에 없고, 임금도 예전 같지 않아서 청년들이 떠날 수밖에 없다”는 토로도 나온다.

◇청년이 떠나자 혼인도, 출생도 줄었다

한때 전국에서 가장 젊은 도시로 꼽혔던 경남 거제시의 변화는 저출생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양질의 일자리 감소가 청년 유출로 이어지고 이는 혼인 감소→출생아 감소→보육·교육 인프라 축소로 연결되는 ‘인구 소멸 도미노’가 현실화했기 때문이다.

29일 이상림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이 전국 시·군·구별 출생아 수 변화를 분석한 결과 거제시의 2024년 출생아 수는 2015년보다 76.5% 급감해 전국에서 세 번째로 감소 폭이 큰 지역으로 나타났다.

거제는 원래 인구감소지역과는 거리가 먼 도시였다.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을 중심으로 성장한 국내 대표 조선산업의 도시로,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국의 청년들이 몰려드는 ‘젊은 도시’로 통했다. 그러나 2016년을 전후해 해양플랜트 사업의 대규모 부실과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수주절벽이 겹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조선업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서 지역 경제를 떠받치던 산업 기반이 흔들렸고, 청년들의 고용 사다리도 함께 무너졌다.

문제는 최근 조선업이 다시 호황 국면에 접어들었음에도 과거처럼 청년들을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업계는 인력난을 호소하지만 정작 청년층 유입은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조선업계 안팎에서는 고용 구조 변화가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과거에는 정규직 중심의 고용이 이뤄졌다면 현재는 필요할 때마다 외부 인력을 투입하는 물량팀 의존도가 높아졌다.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지만 지역에서는 청년 정착과 인구 유입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실제로 조선업 현장에서는 숙련공 상당수가 다른 지역을 오가는 중장년층 인력 위주로 채워지고 있다. 공정이 끝나면 다른 조선소나 건설 현장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아 지역 소비나 혼인, 출산으로 이어지는 효과도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 김일환 기자)
(그래픽= 김일환 기자)
◇청년들이 떠난 이유는 ‘막막한 미래’

특히 청년들이 체감하는 임금 경쟁력도 과거와 달라졌다. 산문집 ‘쇳밥일지’를 쓴 거제 조선소 용접노동자 출신 작가 천현우 씨는 그 이유로 무너진 임금 체계를 꼽았다.

천 작가는 “과거에는 초반에 적은 임금을 받더라도 몇 년 버티면 선배들처럼 내 가치가 올라간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사회적 계약이 무너졌다”며 “물량팀으로 들어가면 각종 공제를 제외하면 실수령 월급이 200만원 남짓이다. 고용보험조차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그렇게 버틴 선배들의 임금도 월 300만원 수준에 머물러 청년들이 미래를 보지 못하고 떠난다”고 말했다.

여성들이 지역에 정착하기 어려운 산업 구조도 문제로 꼽힌다. 거제와 같은 제조업 중심 도시는 남성 중심 생산직과 여성 중심 서비스직으로 일자리가 분리된 경우가 많다. 상대적으로 양질의 사무·전문직 일자리가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청년 여성의 유출이 이어지고, 이는 혼인과 출산 기반 약화로 연결된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저출생 문제를 단순히 출생아 수 감소로 볼 것이 아니라 청년층 유출과 정착 여건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청년들이 지역에 머물지 못하면 혼인이 줄고, 혼인 감소는 다시 출산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거제에서는 출산 주연령층 인구가 줄어들면서 혼인과 출산 기반도 함께 약화됐다. 거제시의 출생아 감소율(76.5%)은 경북 영양군(72.2%)과 봉화군(73.6%), 경남 산청군(74.8%) 등 정부가 지정한 인구감소지역보다도 더 높았다.

이 같은 현상은 거제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출생아 감소율이 높은 지역에는 통영시(73.6%)와 울산 동구(68.9%) 등 조선업 비중이 높은 산업도시들도 포함됐다. 주력 산업이 침체되면 청년층 유출이 이어지고, 이는 혼인 감소와 출생아 급감으로 연결되는 구조가 여러 산업도시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거제 사례가 최근 출생아 수와 합계출산율 반등 국면에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고 평가한다. 이상림 연구원은 “그동안 정부의 저출생 정책은 집값 부담이나 일·가정 양립 등 서울·수도권의 현실을 중심으로 설계된 측면이 있다”며 “지방은 주거보다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만큼 지역 산업 경쟁력을 높이고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고용 환경을 만드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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