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연장과 해고의 자유[이근면의 사람이야기]

사회

이데일리,

2026년 7월 02일, 오전 05:00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 우기면 이긴다. 다중의 힘으로 ‘떼’ 쓰면 되는 ‘떼법’이라는 용어가 살아 있는 사회다. 안타깝게도 사회 문제 특히 기득권이나 이익집단이 등장하는 문제일수록 흔히 듣게 되는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국가나 사회 전체 미래 세대가 고루 따뜻해지는 지혜가 절실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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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년 연장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고령화 사회가 본격화하면서 60세 정년은 더 이상 현실과 맞지 않는다. 평균수명은 80세를 훌쩍 넘었고 건강수명은 더 크게 늘었다. 국민연금 수급 시점은 늦어지고 은퇴 이후 삶은 길어졌다. 정년 연장은 이제 충분히 논의해야 할 시대적 이슈다.

문제는 정년 연장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높지만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과 기업의 부담, 청년세대의 기회, 노동시장 구조 개혁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정년 연장을 주장하는 일부 세력이 마치 정년 연장이 선(善)이고 이에 대한 문제 제기는 악(惡)인 것처럼 몰아가는 분위기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란 한쪽의 요구를 관철하는 과정이 아니다. 얻는 것과 내놓을 것의 균형이 필요하다. 지금의 정년 연장 논의는 ‘정년은 늘리고 임금은 유지하되 고용도 보장하라’는 주장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기업도 청년도 국가도 감당해야 할 비용이 있다면 그것 또한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정년 연장의 가장 큰 쟁점 중 하나는 청년 일자리다. 흔히 “정년 연장과 청년 일자리는 무관하다”고 말한다. 물론 경제가 성장하고 기업이 지속적으로 투자한다면 반드시 제로섬 관계만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기업의 인건비 총액과 조직 규모는 무한하지 않다. 특히 공공기관, 공기업, 대기업과 같이 정원이 정해진 조직에서는 정년이 연장될수록 신규 채용 여력이 줄어드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청년의 입사 시기는 늦어지고 승진 기회도 지연된다. 결국 정년 연장은 기존 근로자의 안정성을 높이는 대신 노동시장에 진입하려는 청년세대의 기회를 일부 잠식할 수 있다. 고령층의 고용 안정이 청년층의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년 연장은 단순히 노사 문제를 넘어 세대 간 이해관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더욱이 지금은 인공지능(AI)과 디지털 전환 시대다. 산업 구조의 급속한 변화는 직무의 소멸과 탄생을 가속화한다. 심지어 일자리 자체가 로봇에 대체되거나 없어지기도 한다. 기업은 생존을 위한 조직과 인력을 재설계한다. 그런데 정년은 연장되고 임금은 연공서열 중심으로 상승하며 해고는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가 유지된다면 기업은 어떤 선택을 할까.

기업 대부분은 신규 채용을 줄이고 자동화를 확대할 것이다. 외주화를 늘릴 것이다. 해외 생산기지 이전도 검토할 것이다. 결국 보호하려던 제도가 오히려 미래세대의 기회를 줄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정년 연장을 이야기한다면 반드시 함께 논의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임금체계 개편과 노동시장 유연성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은 여전히 연공급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근속연수가 길어질수록 임금이 올라가는 구조다. 만약 정년을 65세로 늘리면서 임금체계는 그대로 둔다면 기업의 부담은 급격히 증가할 수밖에 없다. 결국 신규 채용 감소와 투자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AI 전환(AX) 시대의 근로생산성은 기업과 개인의 운명을 가르기 때문이다.

정년 연장을 원한다면 직무급제와 성과급제 확대에 대해서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같은 연령이라고 해서 동일한 생산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 오래 일하는 대신 임금체계도 현실에 맞게 조정하는 것이 상식적인 접근이다.

또 하나는 재교육과 직무 전환이다. 정년 연장은 하던 일들에 더 오래 앉아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새로운 직무에 적응하며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만 늘어나는 제도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주제가 있다. 바로 해고의 자유다. 우리 사회는 채용의 자유는 이야기하면서도 해고의 자유는 금기시해 왔다. 그러나 채용과 해고는 노동시장의 양면이다. 기업이 사람을 적극적으로 채용하려면 필요할 경우 합리적으로 인력을 조정할 수 있다는 신뢰도 있어야 한다. 정년은 늘어나고 해고는 더욱 어려워진다면 기업은 처음부터 채용 자체를 줄이려 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해고의 자유가 자의적 해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보복성 해고나 부당해고를 허용하자는 것도 아니다. 성과 부족, 직무 부적응, 경영상 필요와 같은 명확한 기준 아래 합리적인 인력 조정이 가능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동시에 국가가 재교육과 재취업 지원, 실업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노동시장이 유연한 국가들은 해고만 쉬운 것이 아니다. 재취업도 쉽고 직업훈련도 강력하다. 기업은 채용을 두려워하지 않고 노동자는 직장을 잃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중요한 것은 직장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일할 기회를 지키는 것이다. 쉽게 재취업이 가능한 시장에서는 해고가 두려울 이유 또한 전혀 없다.

정년 연장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사회적 정의의 이름으로 일방적으로 추진해서는 안 된다. 정년 연장을 요구하는 측도 임금체계 개편을 수용해야 하고 재교육 의무를 받아들여야 하며 노동시장 유연화에 대해서도 책임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권리만 주장하고 부담은 사회와 기업에 떠넘기는 방식으로는 지속 가능한 합의를 만들 수 없다.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것은 정년을 몇 살로 늘릴 것인가가 아니다. 더 오래 일하면서도 청년이 더 많은 기회를 쥘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다. 고령층의 안정과 청년층의 희망이 충돌하지 않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이제는 정년 연장만 외칠 것이 아니라 임금체계 개편, 재교육, 노동시장 유연화 그리고 해고의 자유까지 포함한 새로운 사회적 계약을 논의해야 할 때다. 그것이 청년과 기성세대, 노동과 기업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이며 대한민국 노동시장의 미래를 위한 진정한 ‘착한 개혁’의 출발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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