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말아야 하는 우리 역사, 2030도 울었죠"

사회

이데일리,

2026년 7월 02일, 오전 06:07

[이데일리 정윤지 기자] 호국보훈의 달이자 6·25 전쟁 76주년을 맞은 지난달 25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 속 한 웹툰 계정에 전쟁 콘텐츠가 올라왔다. 참전 용사들이 들려준 전쟁 당시 기억을 만화로 풀어낸 게시물이었다. 단 4개 편에 불과했던 이 게시물은 젊은 세대의 큰 공감을 이끌어 내며 1000만 조회수를 넘었다. 교과서 속 역사로만 여겨졌던 전쟁의 기억이 ‘인스타툰(인스타그램+웹툰)’으로 세상에 나와 큰 호응을 얻은 것이다.

인스타그램에서 주로 활동하는 웹툰작가 뽀꼬(필명)씨가 6·25 전쟁 참전용사인 류재식(94)씨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린 인스타툰 속 장면. (사진=본인 제공)
인스타그램에서 주로 활동하는 웹툰작가 뽀꼬(필명)씨가 6·25 전쟁 참전용사인 류재식(94)씨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린 인스타툰 속 장면. (사진=본인 제공)
이 작품을 그린 작가 조수빈(가명·필명 뽀꼬) 씨는 지난달 29일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사라지는 생체 데이터를 디지털 데이터로 남기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2018년부터 인스타그램에서 일상과 힐링을 소재로 한 만화를 그려온 그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방식으로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2030세대에 참전용사의 기억을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번 단편은 작가의 친할아버지 경험으로부터 시작됐다. 전쟁 당시 10살이었다는 그의 할아버지는 2년 전 건강이 악화하며 손주들에게 어린 시절 겪은 전쟁 이야기를 들려줬다고 한다. 조 작가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우리가 알아야 할 소중한 얘기를 모를 수도 있겠다 싶어 문득 겁이 났다”며 “우리 삶을 선조들이 어떻게 준 건지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한결’이라는 이름을 붙인 단편선 제작을 위해 조 작가는 국가보훈부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11월 참전용사 류재식(94) 씨를 만날 수 있었다.

하얀 정복을 입은 류씨에게 조 작가가 ‘젊은 세대에게 가장 들려주고 싶은 전쟁 이야기’를 묻자 “송장이 정말 많았다는 걸 꼭 담아줘”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군인이 아닌 민간인의 희생이 컸다는 의미였다. 조 작가는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일인지 알리고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참전용사의 당부였다”고 했다.

만화에는 류씨가 겪은 전장에서의 소소한 일화부터 얼떨결에 학도병이 된 경험 등이 다양하게 담겼다. 우리 군에게 첫 승전을 안겨준 춘천에서의 전투에서 류씨가 고작 17세 북한군을 발견하고 돌려 보낸 경험도 그려졌다.

댓글에서는 ‘교복을 입고 총을 들었을 그 어린 학생들의 용기가 대단하고 마음이 아프다’는 반응이나 자신의 조부모로부터 들은 전쟁 이야기를 나누는 글이 줄을 이었다. 조 작가는 “2화까지는 원래 계정 콘셉트에 맞게 가벼운 내용으로 그렸는데 반응이 뜨거워 3, 4화는 아예 새로 그렸다”며 “늘 재밌다거나 힐링된다는 댓글만 보다가 울었다는 댓글이 많아 생소하고 기분이 묘했다”고 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주로 활동하는 웹툰작가 뽀꼬(필명)씨가 6·25 전쟁 참전용사인 류재식(94)씨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린 인스타툰 속 장면. (사진=본인 제공)
인스타그램에서 주로 활동하는 웹툰작가 뽀꼬(필명)씨가 6·25 전쟁 참전용사인 류재식(94)씨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린 인스타툰 속 장면. (사진=본인 제공)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평소 구독자의 70%가 여성인 데다 25~35세가 주를 이루는 계정 특성상 조 작가는 처음엔 큰 관심을 기대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4화를 합친 누적 조회수는 1045만회를 기록했고 나흘 동안 계정 팔로워는 2만명이나 늘었다.

조 작가는 “게시물 공유 횟수도 압도적으로 많을 뿐만 아니라 게시물을 본 계정 수는 그대로인데 조회수는 계속 올라가고 있다”며 “독자들이 다시 보고 다시 보고 하며 곱씹으면서 보는구나, 이 콘텐츠를 좋아하고 지지해주고 있구나 싶다”고 했다. 역사 수업 시간에 자료로 활용해도 되느냐는 교사들의 문의도 잇따랐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조 작가는 또 단편선 기획 초기 거대한 역사보다는 한 사람의 기억에 집중하려던 의도도 잘 받아들여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전쟁은 이념과 이념 간의 싸움인데 그 사이에서 개인이 이렇게 힘들어한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다”며 “독자들도 그 시선에 이입하고 제 의도대로 받아들여줘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참전용사들의 기억을 기록하는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번 단편선이 큰 인기를 끈 후 숏폼이나 롱폼 영상, 디자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쟁을 기억하려는 콘텐츠 크리에이터 40명이 힘을 모으기로 했다.

조 작가는 “각자의 방식으로 디지털로 남기기로 했고 저는 제 할아버지 이야기를 정성스럽게 그리고 있어 내년에 선보일 계획이다”며 “마이클 잭슨을 살아있을 때 봤던 사람들이 지금도 그 경험을 자랑하는 것처럼 우리도 영웅들의 얘기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오랜 자랑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역설했다.

지난해 11월 6·25 전쟁 참전용사 류재식(94)씨가 인스타그램에서 주로 활동하는 웹툰작가 뽀꼬(필명)씨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작가 제공)
지난해 11월 6·25 전쟁 참전용사 류재식(94)씨가 인스타그램에서 주로 활동하는 웹툰작가 뽀꼬(필명)씨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작가 제공)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