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아현699번지 재개발 예정 구역에서 40년 넘게 살아온 라모(81) 씨는 장마 소식만 들리면 불안한 마음에 잠이 오지 않는다. 집 바로 옆 담벼락은 갈라졌고 옹벽에는 깊은 균열이 생겼다. 장마 때마다 금 간 틈으로 빗물이 스며들까 마음을 졸인다. 수차례 구청에 민원을 넣었지만 돌아온 답은 “예산이 부족하다”는 말 뿐이었다.
서울 강북구 미아 9-2 재건축 지역 벽면 곳곳에 페인트가 벗겨지고 금이 간 모습. (사진=정유진 수습기자)
전국이 장마권 영향에 접어든 가운데 서울 곳곳의 재개발 예정 구역 주민들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사실상 방치 상태인 이곳들은 균열이 생긴 옹벽과 담벼락, 담배꽁초와 흙으로 막힌 하수구가 그대로 남아 있지만 ‘곧 재개발될 곳’이라는 이유로 정비는 뒤로 밀리고 있다.
6일 이데일리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마포구·강북구·종로구 등 재개발 예정 구역 일대에서 노후 옹벽 균열과 배수 불량이 잇따라 확인됐다.
영화 ‘기생충’ 촬영지로 알려진 마포구 아현699번지 재개발 예정 구역은 상황이 특히 심각했다. 언덕길 골목의 하수구는 담배꽁초와 쓰레기로 막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위쪽 배수구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곳에서 10년 넘게 살고 있다는 주민 A(29)씨는 “비가 많이 오면 창문 틈으로 물이 새는 집이 적지 않다”며 “재개발 이야기는 수년째 반복되는데 구청에서 별도로 보수했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일대를 담당하는 택배기사는 “비탈길이라 장마철에는 길이 미끄러워 사고가 날 뻔한 적도 있다”며 “골목 주차까지 겹치면 더 위험하다”고 했다.
◇금 간 옹벽, 기울어진 건물…“무너지면 큰일”
서울 강북구 삼양로53길 재개발 예정 구역의 노후 옹벽 하부가 파손돼 콘크리트와 내부 자재가 노출돼 있다. (사진=정유진 수습기자)
다른 재개발 예정지 종로구 창신동 골목엔 벽돌 옹벽 일부가 무너져 ‘안전제일’ 펜스만 덩그러니 설치돼 있었다. 인근 파출소 관계자는 “관내가 고지대라 침수 위험은 상대적으로 적다”면서도 “재개발이 10년 가까이 지연되면서 노후 주택은 그대로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강북구 미아동 재개발 예정지에서도 균열이 간 옹벽과 담장이 곳곳에서 확인됐고, 솔샘 일대 재개발·재건축 지역에서도 장마철마다 담벼락 붕괴와 전선 화재 신고가 반복된다. 인근 파출소 경찰관은 “위험 요소가 발견되면 한국전력이나 구청에 즉시 알리지만 근본적인 보수는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자체는 최대한 장마철에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방지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북구청 관계자는 “(장마철을 맞아) 외벽과 담장, 옹벽, 석축 등 붕괴 우려 시설을 집중 점검하고 있으며 위험성이 확인되면 소유자에게 보수·보강을 요청하고 필요하면 응급조치도 병행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재개발 예정 구역의 구조적 한계 때문에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송규 한국안전전문가협회장은 “재개발·재건축을 앞두고 있으면 보수가 필요하더라도 돈을 투자하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사유지라는 이유로 지자체가 손을 놔버리면 큰 비가 왔을 때 대형 참사가 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붕괴 위험이 큰 시설은 지자체가 우선 보수한 뒤 비용을 건물주에게 청구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부 교수도 “균열이 있는 옹벽과 축대는 집중호우가 시작되면 지하수와 수압 증가로 언제든 붕괴할 수 있다”며 “재개발 지역은 시설 개선이 쉽지 않은 만큼 주민들에게 위험 정보를 적극 알리고, 장마철에는 실시간 점검과 선제적 대피 체계를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아현699번지 재개발 예정 구역 내 한 계단 콘크리트가 여기저기 갈라져 있다. (사진= 정유진 수습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