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전과 살아가기] 그때 그 첫 마음으로

사회

이데일리,

2026년 7월 12일, 오전 06:20

[심부전과 살아가기] 그때 그 첫 마음으로
[인천세종병원 김경희 심장이식센터장] 어릴 때 나는 힘없는 사람을 돕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서울 올림픽을 준비하던 시절, 내가 다니던 학교 근처의 거리는 늘 분주했다. 나라 전체가 큰 행사를 앞두고 있었고, 거리와 시장은 정비되었다. 어느 날 시장 근처에서 생선을 팔던 할머니의 좌판이 치워지는 장면을 보았다. 할머니는 항의했지만, 누구도 쉽게 도와주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도 이상하게 아팠다. 힘없는 사람의 말은 왜 이렇게 쉽게 밀려나는 걸까. 누군가의 말을 제대로 들어주고, 무시하지 않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 무렵 병원에서 겪은 일도 오래 남았다. 눈이 아파 병원에 갔고, 오래 기다린 끝에 의사를 만났다. 의사는 내 눈을 아프게 뒤집어 보고 짧게 말했다. 알레르기 결막염이니 치료받으라고. 나는 어린 마음에 물었다.

“왜 자꾸 생기나요?”

돌아온 대답은 차가웠다.

“그걸 네가 왜 알아야 하냐?”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나는 병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환자의 질문을 귀찮아하지 않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환자의 눈을 아프게 뒤집지 않고, 따뜻하게 손을 잡고, 병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실력 있는 의사와 따뜻한 의사는 서로 다른 길이 아니라고 믿었다. 오히려 진짜 실력은 환자의 두려움을 알아차리는 데서 시작한다고 생각했다.

의사가 된 뒤 나는 심장을 선택했다.

심장은 어려웠지만 이상하게 나를 끌어당겼다. 심장초음파 화면에서 심장이 열리고 닫히고, 수축하고 이완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생명이 눈앞에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특히 심부전 환자를 보면서 나는 더 깊이 심장에 붙들렸다. 심부전은 단순히 심장의 펌프 기능이 떨어지는 병이 아니었다. 숨쉬는 방식, 잠자는 자세, 먹는 양,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 직업, 가족계획, 경제적 부담, 그리고 하루하루의 희망까지 바꾸는 병이었다.

심부전 환자를 오래 본다는 것은 한 사람의 시간을 오래 지켜보는 일이다. 외래에서 만나고, 입원실에서 만나고, 중환자실에서 만나고, 다시 외래에서 만난다. 좋아졌다가 나빠지고, 퇴원했다가 다시 입원하고, 약을 올렸다가 줄이고, 기계의 도움을 고민하고, 이식을 기다린다. 심부전 의사에게 환자는 진단명이나 검사 결과가 아니다. 한 사람의 삶 전체가 진료실 안으로 들어온다.

심부전이 깊어지면 어느 순간 약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시간이 온다. 그때 우리는 좌심실보조장치, LVAD를 생각한다. LVAD는 말기 심부전 환자에게 생명줄이지만 결코 쉬운 선택은 아니다. 몸 밖으로 이어지는 선, 매일 챙겨야 하는 배터리, 감염에 대한 두려움, 기계 알람에 대한 긴장, 샤워와 잠자리 그리고 이동의 불편함. LVAD를 가지고 산다는 것은 심장이 기계의 도움을 받는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매일 자신의 생명을 관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몇 년을 버티는 환자들이 있다. 기계를 몸에 달고, 숨을 고르고, 가족과 함께 살아가며, 다시 이식의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들. 나는 그런 환자들을 보며 의학이 얼마나 대단한지, 동시에 얼마나 불완전한지 매번 느낀다. 의학은 죽음의 시간을 뒤로 밀 수 있지만 모든 두려움을 없애지는 못한다. 환자는 매일 살아가지만 매일 조금씩 기다린다.

심장이식은 그 기다림 끝에 열리는 아주 좁은 문이다. 기증자가 생겼다고 해서 모든 것이 곧바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혈액형, 체격, 폐혈관 상태, 과거 수술, 감염 위험, 기증자 심장의 상태, 수술 가능성, 이식 후 회복 가능성까지 수많은 조건을 동시에 봐야 한다. 어떤 환자에게는 체격과 비만도 큰 고민이 된다. 수혜자의 몸이 크고 오랫동안 심부전을 앓았다면 새 심장이 그 몸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지, 폐혈관과 우심실은 버틸 수 있을지, 수술 시간과 출혈 위험은 어느 정도일지 하나하나 따져야 한다. 숫자 하나로 결정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런 결정을 할 때마다 오래 들여다본다. 기회를 놓치면 환자는 다시 기약 없는 기다림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무리한 결정은 더 큰 위험을 부른다. 기다림의 위험과 수술의 위험 사이에서 의사는 늘 불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가장 나은 길을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이식 의학은 기술이면서 동시에 책임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자신이 있었다. 내가 모든 것을 안다는 자신감이 아니었다. 위험이 없다는 오만도 아니었다. 오랫동안 쌓아온 경험, 환자를 오래 보아온 시간, 함께 일하는 팀에 대한 신뢰에서 온 자신감이었다. 우리 팀은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밤을 견뎌왔다. 심장이식의 성적은 한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외과, 내과, 마취과, 중환자의학, 간호사, 코디네이터, 혈액은행, 검사실, 재활, 감염관리까지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같은 방향을 보고 움직여야 한다.

나는 그 시스템을 믿었다. 우리 팀의 실력을 믿었다. 내 판단도 믿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감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두려움만으로는 환자를 살릴 수 없다. 심장이식을 기다리는 환자에게 좋은 기회가 왔을 때, 의사는 위험만 세다가 문을 닫아버릴 수도 없고, 희망만 보고 눈을 감을 수도 없다. 위험을 보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자신감과 겸손은 반대말이 아니다. 좋은 의사는 둘을 함께 가져야 한다.

그러나 어떤 날은 그 자신감이 산산이 부서진다.

이식 후 며칠간 비교적 안정적으로 보이던 환자가 있었다. 우리는 매일 심장 기능을 보고, 혈압과 폐동맥압을 확인하고, 호흡과 배액과 혈액검사를 살폈다. 이식 직후 환자에게 “괜찮다”는 말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그러나 적어도 겉으로 드러난 흐름은 하루하루를 지나고 있었다. 긴 심부전의 터널을 지나 이제 새로운 심장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조심스럽게 기대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낮, 갑자기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는 등 쪽 통증을 호소했다. 곧 혈압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수술 후 환자에게 갑작스러운 통증과 저혈압이 생기면 생각해야 할 것은 많다. 폐색전증일 수도 있고, 우심실이 갑자기 버티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고, 심장 주변에 피가 고이는 심장눌림일 수도 있고, 출혈일 수도 있다. 그는 비만이었고, 큰 수술을 받은 직후였고, 갑작스러운 통증과 빈맥, 저혈압이 있었다. 처음에는 폐색전증도 강하게 떠올렸다. 그것은 틀린 생각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반드시 생각해야 할 가능성 중 하나였다.

그러나 곧 흉관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혈액성 배액이 나오기 시작했다. 상황은 출혈 쪽으로 기울었다. 문제는 속도였다. 그의 혈압은 빠르게 무너졌고, 혈색소는 급격히 떨어졌다. 의료진은 수혈과 응급 수술 준비와 심폐소생술을 동시에 진행했다. 하지만 사람의 몸이 무너지는 속도는 때로 우리가 가진 모든 시스템보다 빠르다. 그날의 시간은 이상하게도 너무 빨리 흘렀고, 동시에 너무 느리게 흘렀다. 몇 분이 한 시간 같았고, 한 시간이 한 순간 같았다.

의료진은 움직였다. 가능한 원인을 찾고, 필요한 처치를 준비하고, 수술적 가능성과 중환자 처치를 동시에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의 몸이 무너지는 속도는 때로 우리가 가진 모든 준비보다 빠르다. 조금 전까지 붙잡을 수 있을 것 같던 생명이 갑자기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순간이 있다.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끝내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의사의 마음이 무너진다.

그는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새 심장을 받은 지 며칠 만이었다. 오랫동안 기다린 심장이었다. 드문 혈액형의 기회였고, 내가 좋은 기증자라고 확신했던 심장이었다. 나는 자신이 있었고, 우리 팀을 믿었고, 이 환자에게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너무 허망하게 떠났다. 그것이 나를 무너뜨렸다.

나는 환자를 잃은 경험이 없는 의사가 아니다. 심부전과 이식의 세계에서 죽음은 늘 멀리 있지 않다. 그러나 어떤 죽음은 유난히 깊게 남는다. 오래 기다렸던 기회였기 때문에, 좋은 기회라고 믿었기 때문에, 내가 자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그 환자가 단지 한 명의 “케이스”가 아니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의사는 환자를 잃으면 언제나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무엇을 놓쳤을까. 더 빨리 알 수는 없었을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살릴 수 있었을까. 내가 너무 자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 자신감이 교만이었을까.

이번에는 그 질문들이 유난히 아팠다. 나는 내 실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우리 팀을 믿었다. 좋은 성적을 만들어온 시스템을 믿었다. 그리고 그런 믿음은 환자를 살리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환자가 허망하게 떠난 뒤, 그 믿음마저 죄책감처럼 느껴졌다. 자신감이 교만이었을까. 내가 너무 확신했기 때문에 더 아픈 것일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생각한다. 교만은 위험을 보지 않는 마음이다. 내가 가졌던 자신감은 위험을 보지 않는 마음이 아니었다. 나는 위험을 알았다. 체격과 비만, 오래된 심부전, 수술의 어려움, 이식 직후의 불확실성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오래 들여다보았다. 더 많이 고민했다. 그래도 앞으로 가야 할 순간이라고 판단했다. 그 판단은 환자를 가볍게 여기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환자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던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좋은 성적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음도 마찬가지다. 한 병원의 이식 성적이 좋다는 것은 비극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비극을 줄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래 긴장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말이다. 좋은 성적은 훈장이 아니라 책임이다. 숫자가 좋을수록 우리는 더 조심해야 한다. 한 명의 죽음도 평균값 뒤에 숨기지 말아야 한다. 생존율이라는 말 뒤에는 집으로 돌아간 환자의 얼굴이 있고, 사망률이라는 말 뒤에는 끝내 돌아오지 못한 한 사람의 이름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일을 병원의 성적을 낮추는 이야기로 쓰고 싶지 않다. 오히려 반대다. 좋은 팀일수록 한 환자의 죽음 앞에서 더 오래 멈춘다. 좋은 의사일수록 한 번의 비극을 숫자로 덮지 않는다. 우리는 잘해왔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하지 않는다. 잘해왔기 때문에 더 묻는다. 무엇을 더 잘할 수 있었을까. 다음 환자를 위해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어떤 준비를 더 빨리,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을까. 그 질문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질문이 곧 자기 처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의학은 지나간 시간 위에서는 늘 명확해 보인다. 그러나 실제 순간에는 여러 가능성이 동시에 열린다. 갑작스러운 통증과 저혈압 앞에서 의사는 폐색전증, 출혈, 심장눌림, 우심실 부전, 부정맥, 감염, 약물 반응을 동시에 생각한다. 환자는 기다려주지 않고, 시간은 충분하지 않다. 그 순간의 판단은 결과를 이미 알고 난 뒤의 판단과 다르다. 의사는 신이 아니라 무너지는 환자 앞에서 가장 가능성 높은 길을 찾아 뛰는 사람이다.

그래도 마음은 쉽게 설득되지 않는다. 머리로는 안다. 환자를 방치한 것이 아니었다. 위험을 가볍게 본 것도 아니었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마음은 묻는다. 그래도 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좀 더 빨리 알아차렸어야 하지 않았을까. 내가 곁에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그 질문이 나를 아프게 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 질문이 내가 아직 그때의 첫 마음을 잃지 않았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교만한 의사는 환자의 죽음 앞에서 오래 멈추지 않는다. 환자를 사랑한 의사는 멈춘다. 기록을 다시 보고, 시간을 다시 맞춰보고, 숫자를 다시 읽고, 마음속으로 환자의 이름을 다시 부른다. 내가 교만했는지 묻는 마음 안에는 사실 이런 고백이 숨어 있다.

나는 이 환자를 정말 살리고 싶었다. 나는 이 환자에게 온 기회를 정말 붙잡고 싶었다. 나는 내 환자가 새 심장으로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어릴 때 나는 힘없는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환자의 질문을 귀찮아하지 않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의대생 때는 환자 한 분 한 분을 또 다른 스승으로 여기며 배웠다. 심부전 의사가 된 뒤에는 환자의 심장뿐 아니라 환자의 시간을 지키고 싶었다.

이번 일을 지나며 알게 되었다. 환자를 위해 산다는 것은 환자를 살리는 기쁨만 감당하는 일이 아니다. 살리지 못한 환자의 이름을 오래 품는 일까지 포함한다. 환자의 가족을 생각하며 마음이 무너지고, 내가 한 판단을 다시 돌아보고, 내가 믿어온 자신감까지 의심하게 되는 시간도 의사의 삶 안에 들어온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환자 곁으로 가야 한다. 다시 외래에서 환자를 만나고, 다시 중환자실로 가고, 다시 심장초음파를 보고, 다시 LVAD 알람을 듣고, 다시 이식 대기자 명단을 살피고, 다시 보호자에게 설명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두려워할 것이다. 두려워하면서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 두려움이 나를 더 조심하게 하고, 그 슬픔이 나를 더 따뜻하게 하기를 바란다.

그때 그 첫 마음으로, 나는 다시 환자 곁에 서고 싶다. 실력 있는 의사가 되고 싶었던 마음. 따뜻한 의사가 되고 싶었던 마음. 힘없는 사람의 말을 무시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마음. 환자의 삶을 숫자 뒤로 숨기지 않겠다는 마음.

그날의 상실은 너무 갑작스럽고 아팠다. 하지만 한 사람의 삶은 마지막 순간만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그를 돌본 시간도, 그를 살리려 했던 마음도, 그를 잃고 무너진 내 마음도 실패만은 아니다. 어쩌면 이 아픔은 아직 내가 의사로 살아가고 있다는 가장 아픈 증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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