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해바라기센터(서울대학교병원 본관)에서 열린 언론 공개 행사에서 관계자들이 성폭력 피해자 지원 시스템과 성폭력 응급키트 사용 절차를 시연하고 있다. 해바라기센터는 성폭력·가정폭력·성매매·스토킹·교제폭력 피해자를 대상으로 365일 24시간 상담, 의료, 수사, 법률 지원을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국가 운영 기관이다. 성폭력방지법 제18조에 따라 여성가족부, 경찰청, 지방자치단체, 의료기관이 협력해 피해자 보호와 2차 피해 예방을 지원하고 있다. 2026.7.12 © 뉴스1 권현진 기자
"강간의 경우 응급키트를 사용한 증거 채취에 3~4시간이 소요됩니다."
심현지 간호사는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서울해바라기센터에서 진행한 성폭력 응급키트 시연을 통해 피해자 증거채취 절차를 공개하며 이같이 말했다.
응급키트는 해바라기센터에서 성폭력 피해자의 신체와 의복 등에서 법의학적 증거를 채취해 경찰 수사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분석에 활용하는 증거채취 도구다. 서울센터의 응급키트 사용 건수는 월 평균 25건 수준이다. 심간호사는 "응급키트는 성기 삽입 기준 72시간 이내에 시행한다"고 말했다.
①피해자 및 관계인 동의서 작성
응급키트를 열기 전 해바라기센터 상담팀과 간호사는 피해자와 상담을 진행한다. 피해자가 사건 이후 양치나 샤워, 소변 등을 했는지 확인하고 가해자 DNA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는 부위를 먼저 파악한다. 기존 병력과 약물·마약 피해 의심 여부, 사건으로 인한 신체 손상 여부도 확인한 뒤 피해자가 증거채취에 동의하면 응급키트를 개봉한다. 피해자 및 관계인 동의서 작성이 가장 첫 단계로, 맨 앞장 피해자 신원 등을 작성하면 함께 붙어 있는 노란색·분홍색 감압복사지(NCR지)는 각각 경찰서와 국과수에 전달된다.
②피해자 진료기록 작성
피해자의 상태를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문진표도 작성한다. 의료진은 피해자의 기본 인적사항과 사건 관련 내용, 과거력과 현병력, 신체 손상 및 생식기 상해 정도, 정신적 후유증 여부를 확인해 진료기록에 남긴다.
③겉옷, 속옷, 생리대 등 이물질 수집
동의서와 문진표 작성을 마치면 본격적인 증거채취를 시작한다. 바닥에는 파란색 종이를 깔고 피해자가 그 위에 올라가 속옷까지 탈의하게 한다. 의료진은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신체에 멍이나 찰과상, 압박 흔적 등 손상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사건 당시 입었던 겉옷과 속옷, 생리대 등을 각각 수거해 증거물 봉투에 나눠 담는다. 심 간호사는 "피해자가 탈의하면서 가해자 체모가 떨어질 수 있어서 (바닥에 깔아둔) 종이도 함께 수거한다"고 설명했다.
④피해자 손톱 샘플 채취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저항했다면 손톱 밑에 가해자의 피부 조직이나 DNA가 남아 있을 수 있다. 의료진은 네 번째 응급키드 단계로 피해자의 손톱을 깎아 증거물로 확보한다. 손톱이 짧아 깎기 어려운 경우에는 면봉으로 손톱 밑을 문질러 검체를 채취한다.
⑤가해자의 얼룩 및 타액 채취
가해자의 입과 피해자 신체가 접촉했을 경우 피부에 타액이 남을 수 있다. 의료진은 가슴과 목, 귀, 구강, 음부 주변과 같이 피해자가 진술한 신체 부위를 중심으로 면봉을 피부 위에서 굴리듯 움직여 타액이나 정액 등 증거를 채취한다. 채취한 면봉은 다른 증거물과 접촉하거나 오염되지 않도록 전용 상자에 고정해 보관하게 된다.
⑥가해자가 흘린 음모 채취
생식기 주변의 증거를 집중적으로 채취하는 단계다. 피해자의 둔부 아래에 종이를 깔고 전용 빗으로 음모를 아래 방향으로 빗는다. 가해자의 체모가 피해자의 음모 주변에 떨어져 있을 가능성이 있어서다. 심 간호사는 "빗질 중 떨어진 음모는 봉투에 채취해서 몇 개를 채취했는지 기재 후 국과수로 전달한다"고 말했다.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해바라기센터(서울대학교병원 본관)에서 열린 언론 공개 행사에서 관계자들이 성폭력 피해자 지원 시스템과 성폭력 응급키트 사용 절차를 시연하고 있다. 2026.7.12 © 뉴스1 권현진 기자
⑦생식기 증거 채취
생식기 증거를 채취할 때는 외음부와 질 내부를 구분해 채취한다. 심 간호사는 "가해자 DNA가 외음부에서만 발견됐으면 추행, 질내에서 발견됐으면 강간이 될 수 있어서 부위를 나누어 채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해자가 콘돔을 사용한 것으로 의심되면 피해자 신체에 남은 콘돔성분 분석도 별도로 의뢰한다.
⑧항문 직장 내 증거 채취
항문 삽입이나 삽입 시도가 있었던 경우 항문 주변과 직장 내부에서도 증거를 채취한다. 이 단계에서도 콘돔 사용이 의심되면 관련 성분 분석을 함께 의뢰한다.
⑨구강 내 증거 채취
가해자의 성기와 피해자의 구강이 접촉했다면 입 안에서도 DNA 등 증거가 발견될 수 있다. 심 간호사는 "치아 사이, 아래턱과 잇몸 경계를 중점적으로 채취한다"고 설명했다.
⑩혈액 채취
혈액은 피해자 본인 확인을 위한 DNA 분석 등에 활용한다. 특히 약물이나 마약, 알코올을 이용한 성폭력 피해가 의심될 때 중요한 검체가 된다. 약물 복용 기억이 명확하지 않더라도 의식을 잃었던 경우, 잠에서 깨어난 뒤 옷이 벗겨져 있거나 성기 주변 상처·통증이 발견된 경우도 약물 사용 가능성을 고려한다.
⑪소변 채취
소변 역시 약물과 마약, 알코올 성분 등을 확인하기 위해 채취한다. 손을 씻는 등 행위로 증거가 소실될 가능성이 있어 가능한 소변 검사를 증거채취 절차의 마지막 단계에 진행한다.
⑫성폭력 증거채취 응급키트 체크리스트 및 기타
증거채취가 끝났다고 모든 과정이 종료되는 것은 아니다. 사건 직후에는 보이지 않았던 멍이 시간이 지나면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진은 매 단계 피해자의 신체를 살펴보고 상처가 발견되면 법의학 자를 대고 크기와 위치를 확인해 기록한다. 모든 증거채취 절차를 마친 피해자에게는 필요에 따라 응급피임약과 예방적 항생제를 투여한다. B형·C형 간염과 에이즈 등은 잠복기가 있는 만큼 최대 6개월까지 추적 검사를 지원한다.
모든 증거채취 절차가 끝나면 피해자가 보는 앞에서 응급키트 박스를 봉인한다. 봉인한 박스에는 증거물임을 확인하는 '에비던스 라벨' 스티커를 붙인다. 이후 피해자 성명 등 필요한 정보를 기재해 경찰에 전달하고, 경찰이 응급키트를 국과수로 보낸다.
채취한 증거물은 곧바로 국과수 분석을 거친다. 심 간호사는 "정액은 의복에 묻어있다면 기간 제한이 없이 검출이 가능하다"며 "증거채취 시점부터 3~4주 뒤에 담당 형사에게 (피해자가) 결과를 안내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해바라기센터의 모든 상담·의료·법률 등 지원은 경찰 신고 여부와 관계없이 받을 수 있지만 응급키트 증거채취는 범죄 혐의 입증을 위한 수사 절차인 만큼 피해 사건이 특정되고 경찰이 사건을 인지해야 진행할 수 있다.
정명신 서울해바라기센터 행정소장은 "피해자가 사건 진행의 주체로 서면 정서적으로 압도돼 수사를 포기할 수 있다"며 "경찰 개입이 부담되지 않도록 피해자의 이해와 절차 적응을 돕는 것이 상담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해바라기센터(서울대학교병원 별관)에서 열린 언론 공개 행사에서 한 관계자가 성폭력 피해자 지원 시스템과 성폭력 응급키트 사용 절차를 시연하고 있다. 2026.7.12 © 뉴스1 권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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