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텔 차의 ‘Earth Cyclicality Eternity III’ . (사진=워크스워크스)
이를 위해 작가가 택한 소재는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전통 십장생(十長生)이다. 해와 산, 물과 구름, 소나무와 대나무, 학과 거북, 사슴과 불로초는 저마다 다른 생명과 시간을 상징하지만, 화면 안에서는 독립된 존재로 머물지 않는다. 서로 스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유기적 흐름을 이루고, 그 관계를 가능케 하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바로 공기다. 전통 회화 속 장엄하고 고정된 상징이 아니라, 서로 얽히고 흐르며 경계가 흐려지는 형상들을 통해 작가는 영원이 정지된 시간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이어지는 하나의 호흡에 가깝다고 말한다.
작가의 화면은 목탄과 젯소를 반복적으로 쌓고 지우는 수행적 방식으로 완성된다. 목탄은 타버린 나무의 흔적으로 생명의 마지막 상태이자 동시에 새로운 선의 시작이며, 젯소는 시작의 바탕이 되면서도 이전 흔적을 덮어버리는 마지막의 모습을 하기도 한다. 한 캔버스 위에 수십 겹의 레이어를 쌓아 올리는 이 반복은 작가에게 단순한 기법이 아닌 하나의 수행이다. 형상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사라진 자리에서 다시 생겨나는 과정을 통해 화면은 시작과 끝, 그리고 다시 시작을 포용하는 순환의 구조를 갖는다.
이는 작가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순환(Cyclicality)’의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습기술 디자인을, 터프츠대학교와 스쿨오브뮤지엄오브파인아트(SMFA)에서 철학과 순수미술을 공부하며 동서양 철학을 함께 탐구해온 차 작가는 “‘색즉시공 공즉시색’ 형상은 곧 공이고, 공은 다시 형상이 된다는 사유가 제 작업의 깊은 구조가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존재는 독립적으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통과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어지고, 끝은 또 다른 시작이 되며 사라짐은 새로운 생성의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에스텔 차의 ‘MoonDance, Oasis’ . (사진=워크스워크스)
정형섭 워크스워크스 대표는 “에스텔 차의 화면은 무언가를 완성해 보여주기보다, 쌓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그 사이에 남는 흔적으로 말을 건네는 회화”라며 “십장생이라는 익숙한 상징을 관계와 순환의 언어로 다시 풀어낸 이번 전시에서, 형상 너머 우리를 잇고 있는 공기의 존재를 함께 느껴보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에스텔 차는 2026년 로이갤러리 2인전을 앞두고 있으며, CICA 미술관, K-Auction, 히피한남 갤러리, 비채아트뮤지엄, PRGM 등에서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 전시는 서울 강남구 학동로56길 43 지하 1층 워크스워크스에서 열린다.
에스텔 차 작가. (사진=워크스워크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