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현황을 떠올렸다. 약사는 환자에게 현재 복용 중인 약을 묻지만 여러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환자가 모든 약을 정확히 기억하기는 쉽지 않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정보 공백은 중복 처방이나 약물 상호작용 같은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약사 전문성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영역이 존재하는 것이다.
대만은 이 같은 문제를 정보 공유 체계로 해결해 왔다. 2013년 최근 6개월간 투약기록을 실시간으로 조회할 수 있는 ‘약력 클라우드’(NHI PharmaCloud)를 도입한 데 이어 이후 진단·검사·영상 기록까지 연계한 ‘국민의료기록 클라우드’(NHI MediCloud)로 확대했다. 현재는 병원과 약국이 환자의 투약·검사·진단 기록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국민 역시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자신의 의료기록을 직접 조회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데이터가 의료기관이 아닌 환자를 중심으로 관리된다는 점이다. 환자가 건강보험카드를 제시해야만 정보 조회가 가능하며 의료기관이 임의로 기록을 열람할 수 없다. 의료정보 활용성과 개인정보 보호를 동시에 고려한 설계라는 점에서 의료 데이터 통합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같은 시스템은 ‘환자 안전’과 ‘건강보험 재정’이라는 두 측면에서 효과를 지닌다. 예로 한 고령 환자가 여러 병원에서 혈압약과 수면제, 진통제를 처방받을 경우 시스템은 중복 처방이나 병용 위험을 즉시 확인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약사는 이를 바탕으로 환자에게 적절한 복약지도를 제공하고 불필요한 중복 처방을 예방하게 된다. 환자는 안전해지며 불필요한 의료비와 건강보험 재정 누수도 줄일 수 있는 효과를 얻는 셈이다.
물론 시스템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대만 역시 비급여 의약품과 일반의약품, 건강기능식품은 아직 기록에 포함하지 않는다. 결국 축적된 정보를 해석하고 위험 요소를 찾아 환자에게 설명하는 역할은 지역 약사의 전문성에 달려 있다. 아무리 뛰어난 정보 시스템이라도 마지막 안전망이 사람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나라 역시 변화의 출발선에 서 있다.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과정에서는 종이 처방전을 대신해 팩스나 사진으로 처방 내용을 전달하는 사례가 늘면서 위·변조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최근에는 이를 개선하기 위한 공적 전자처방전 전달 시스템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국민이 어느 약국에서든 안전하게 처방을 받을 수 있는 공공 전달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전자처방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전자처방전이 정보가 안전하게 이동하는 ‘길’이라면 클라우드 기반 의료기록은 그 길에 흐르는 ‘내용’이다. 길과 내용이 함께 갖춰질 때 비로소 환자 중심 보건의료체계가 완성될 수 있다.
이번 대만 방문에서는 서울시약사회와 타이베이시약사회, 도쿄도약제사회가 공적 전자처방전 전달 시스템을 주제로 공동 세미나를 개최했다. 세 도시 약사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것은 전자처방전은 특정 사업자의 이해관계가 아닌 국민 안전을 위한 공공 인프라여야 한다는 점이었다.
대만에서 확인한 것은 단순한 첨단 기술이 아니었다. 환자 안전을 위한 기술과 제도, 그리고 약사 전문성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의료체계였다. 이제 우리도 대만의 메디클라우드와 같은 환자 중심 의료기록 시스템의 필요성을 알리고 논의를 한 단계 발전시켜야 한다. 공적 전자처방전 전달 시스템의 도입과 함께 투약·검사·진단 기록이 유기적으로 연계될 때 중복 처방을 줄이고 국민의 안전을 두텁게 지키며 투명하고 전문성 있는 보건의료체계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