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모습. 2026.3.12 © 뉴스1 이호윤 기자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관련 혐의로 재판을 받는 피고인들이 연달아 재판부 기피를 신청하면서 재판이 잠시 중단됐던 가운데, 실제 전국 법원의 제척·기피·회피 신청 건수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인용 건수는 최근 4년 동안 3건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법조계에서는 대부분 재판 지연 목적의 기피 신청으로, 제도의 도입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대법원이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방법원 형사 사건에서 제척·기피·회피 신청 건수는 2022년 282건에서 지난해 416건으로 1.5배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는 △2023년 370건 △2024년 405건 △2025년 416건을 기록했으며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138건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국 고등법원 형사 사건의 제척·기피·회피 신청 건수는 2022년 24건에서 지난해 71건으로 3배가량 늘어났다.
반면 인용 수는 1~2건에 불과했다. 지법의 경우 2022년 단 한 건이 인용됐으며 2023년부터 올해 5월까지 인용된 신청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고법은 2022년 2건이 인용된 이후 올해 5월까지 인용된 사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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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척·기피·회피는 공정한 재판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민사소송법에서는 법관 또는 그 배우자나 배우자이던 사람이 사건의 당사자가 되거나 사건의 당사자와 공동권리자·공동의무자 또는 상환의무자 관계에 있을 때 제척하도록 정하고 있다. 또한 당사자와 친족 관계가 있거나 그러한 관계에 있었을 때, 법관이 사건 당사자의 대리인이었거나 대리인이 된 때에 제척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에서도 법관이 피해자이거나 피고인 또는 피해자의 친족 또는 친족 관계가 있을 때 등 제척하도록 하고 있다.
기피는 법관이 불공정한 재판을 할 우려가 있을 때 검사 또는 피고인이 법관을 배제할 것을 신청할 수 있는 제도다. 민사 사건에서도 법관이 그러한 우려가 있을 때 당사자가 신청할 수 있다. 회피는 법관 자신이 이러한 염려가 있다고 생각할 때 그 사건의 관여에서 피하는 것을 뜻한다.
이 중 '기피'가 가장 많은 건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대법원에서는 제척·기피·회피 별도 건수를 관리하고 있진 않다.
법조계에서는 기피의 경우 법관이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다는 신청 사유를 들지만, 실제로는 재판을 지연시킬 목적의 신청이 많다는 분석이다.
윤 전 대통령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 김 전 장관은 내란중요임무 종사 사건 항소심에서 각각 기피 신청을 내 대법원에서 최종 기각이 확정될 때까지 재판이 잠정 중단됐다. 특히 김 전 장관은 기피 신청에 대해 심리하는 재판부에 대해 기피 신청을 내기도 했다.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 측은 기피 신청 기각 결정에 불복해 재항고했으나 최종 기각됐고, 이 과정을 거치며 재판이 약 한 달간 정지됐다.
법조계에서는 재판 지연 목적의 기피 신청이 많아지면서 실제 법원의 사건 처리 지연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시간 끌기 위한 기피 신청이나 재판부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기 위한 신청이 대부분"이라며 "재판부에서는 불필요한 증거 신청이라고 판단해 이를 받아주지 않을 때 기피 신청이 들어온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부장판사도 "한 당사자가 변론 재개를 희망했으나 이미 예정한 변론 과정에서 모든 주장을 다 들었다고 판단해 변론을 종결했을 때 기피 신청이 들어온 경우가 있었다"며 "기피 제도의 경우 본래 목적으로 사용되기보다는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수도권의 한 부장검사는 "재판을 지연시키기 위해 기피 신청한 뒤 다음 절차를 진행하지 못하도록 변호인들이 일제히 사임한 경우도 있었다"며 "그동안 구속 기간이 만료돼 석방된 뒤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은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윤민선 법무법인 새별 변호사는 "피고인 중에서는 중형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 변호인에게 기피 신청을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미 집행유예 기간에 있는 피고인의 경우 그때 판결이 선고되면 집행유예 기간 중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효과가 발생하니까 그 기간을 넘기 위해 재판 지연 목적으로 기피를 신청하기도 한다"고 했다.
재판 지연 등 다른 목적으로의 기피 신청을 줄이기 위해서는 간이기각 사유를 더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형사소송법 제20조는 기피 신청이 소송의 지연을 목적으로 함이 명백한 경우 신청을 받은 법원 또는 법관은 결정으로 이를 기각한다고 규정한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지연 목적이 명백한 경우를 간이기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이 부분을 더 확대해 '명백'하지 않은 경우도 기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기피 제도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현재 잘못 활용하는 사례에 대한 대응방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shhan@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