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제12차 전기본은 韓 산업전략의 시험대다

사회

이데일리,

2026년 7월 31일, 오전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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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민 한국원자력학회 회장·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 인공지능(AI)과 반도체를 중심으로 세계 산업 질서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이제 AI 경쟁력은 알고리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AI 데이터센터와 첨단 제조시설에 필요한 막대한 전력을 얼마나 안정적·경제적으로 그리고 적기에 공급할 수 있는지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정부가 수립 중인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은 단순한 전력 분야의 행정계획이 아니다. 발전소를 몇 기 건설하고 전원별 비중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를 넘어 대한민국의 AI·반도체 등 미래 전략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할 전력 인프라를 설계하는 국가 전략이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용인·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와 AI 데이터센터 계획을 종합하면 약 39.7GW의 전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 최대전력수요의 약 40%에 해당하는 규모이며 발전설비로는 APR(Advanced Power Reactor) 1400급 대형원전(한국형 3세대 가압경수로 원자로) 약 28기에 맞먹는다. 물론 이 모든 전력을 원자력으로 공급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기존 수요예측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새로운 전력수요가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아무리 뛰어난 산업정책도 필요한 전력을 제때 확보하지 못하면 실현될 수 없다. 이제는 산업정책이 전력계획을 결정하는 시대가 아니라 전력계획이 산업정책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시대다. 글로벌 기업들은 전력 공급의 안정성과 적시성을 투자 결정의 핵심 요건으로 고려하고 있으며 전력 공급이 불확실한 지역은 투자 경쟁에서 뒤처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따라서 AI 산업의 성장 속도와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일정 등을 반영한 현실적인 전력수요 전망이 필요하며 제12차 전기본은 이러한 수요를 언제까지, 어떤 방식으로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실행 가능한 국가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과제를 하나의 전원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태양광과 풍력은 탄소중립을 위해 지속적으로 확대돼야 한다. 그러나 기상 조건에 따라 출력이 변동하기 때문에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클러스터가 요구하는 24시간 안정적인 대규모 전력을 공급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에너지저장장치(ESS)는 출력 변동을 보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장기간에 걸쳐 대규모 전력을 공급하기에는 기술적·경제적 제약이 존재한다. 따라서 이러한 전력수요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하려면 기상 여건과 관계없이 대규모 무탄소 전력을 24시간 공급할 수 있는 원자력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신규 원전 건설과 기존 원전의 안전한 계속운전 그리고 소형모듈원전(SMR)의 상용화를 균형 있게 추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자력은 계획부터 인허가, 건설, 계통 연계까지 장기간이 소요되는 국가 핵심 인프라다. 따라서 미래 산업이 요구하는 시점에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려면 수요가 현실화된 이후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선제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산업적 역량을 이미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설계·건설·운영 기술을 갖춘 국가다. 이러한 역량은 해외 원전 수출을 통해 이미 국제적으로 검증됐다. 원자력은 AI 시대 전력 경쟁에서 대한민국이 활용할 수 있는 가장 큰 국가적 자산인 것이다. 정부가 원자력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점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이제 검토를 넘어 미래 전력수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적기에 정책으로 구체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갖춘 세계적 경쟁력을 적기에 활용하지 못한다면 미래 산업의 성장 기회를 스스로 놓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제12차 전기본은 대한민국 산업전략의 시험대다. AI 시대 국가 경쟁력은 미래 산업이 필요로 하는 전력 인프라를 얼마나 선제적으로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 급증하는 전력수요에 대응하고 무탄소 전력을 적기에 공급하기 위해서는 신규 원전과 SMR을 포함한 원자력 확충 계획을 제12차 전기본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 이는 더이상 선택이 아니라 대한민국 산업 경쟁력을 지키기 위한 필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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