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병원 가셔야 해요”…폭염 속 치매노인 위험↑

사회

이데일리,

2026년 8월 05일, 오후 02:21

[이데일리 안치영 기자] “아버님, 지금 체온이 많이 높아요. 저희와 병원에 가셔야 할 것 같아요.”

4일 서울 동대문구 지하철 회기역 탑승장. 계단에 한 어르신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역무원이 계속 어르신의 이름과 집을 물었지만 어르신은 제대로 답하지 못하면서 ‘집에 가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의 몸에서는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대가 측정한 체온은 38도를 넘었다. 역무원들은 노인에게 부채질하며 열을 식혔다. 휴대전화에서는 동대문구의 치매 관련 기관 연락처가 발견됐다. 가족에게도 전화를 걸었지만 연락이 닿은 동생은 전주에 있었고 노인의 병력이나 생활 상태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구급대원은 연신 “어르신 이름이 뭐예요?”, “어디가 불편하세요?”라고 물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구급대원들은 어르신에게 다리에 힘을 주라고 말하며 구급차로 부축했다. 그러나 구급차는 바로 출발하지 못했다. 복용 약과 기존 질환, 보호자를 확인하기 위해 경찰까지 현장에 출동했다. 신고 이후 병원으로 출발하기까지는 약 1시간이 걸렸다.

4일 서울 동대문구 회기역에서 역무원들이 의사소통이 어려운 노인에게 부채질을 하며 열을 식혀주고 있다. 노인은 체온이 38도를 넘어 온열질환이 의심됐으며, 이후 보호자 확인 등을 거쳐 병원으로 이송됐다. (사진=안치영 기자)
4일 서울 동대문구 회기역에서 역무원들이 의사소통이 어려운 노인에게 부채질을 하며 열을 식혀주고 있다. 노인은 체온이 38도를 넘어 온열질환이 의심됐으며, 이후 보호자 확인 등을 거쳐 병원으로 이송됐다. (사진=안치영 기자)
당시 노인은 치매와 온열질환이 의심되는 상태였다. 치매와 온열질환이 겹치면 환자는 응급의료의 출발선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치매 환자는 갈증이나 어지럼증을 느껴도 이를 설명하거나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워서다. 길을 잃고 폭염에 장시간 노출돼도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구급대도 난처할 수밖에 없다. 환자가 병력을 설명하지 못하면 복용 약과 기저질환을 확인하기 어렵다. 안전한 치료를 위해 보호자를 찾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이 과정이 길어지면 체온을 낮추고 발열 원인을 확인하는 진단과 치료도 늦어질 수 있다.

최대해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은 “노인과 소아는 온열질환에 훨씬 취약하다”며 “의식 변화와 고열이 있다면 보호자를 찾는 것보다 먼저 병원으로 옮겨 체온을 낮추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여름철에는 치매 환자의 실종 위험도 커진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치매 환자 실종신고는 월평균 1382건이었지만 7~8월에는 월평균 1642건으로 약 1.2배 늘었다.

치매 환자는 시간과 장소를 혼동하거나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잊는 ‘지남력 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 이 때문에 목적지 없이 거리를 배회하거나 집을 나섰다가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무더위를 피해 지하철역이나 야산으로 이동했다가 거주지에서 멀어지면 수색 시간도 길어진다. 폭염에 오래 노출돼도 스스로 그늘을 찾거나 물을 마셔야 한다는 판단을 하지 못할 수 있다.

4일 서울 동대문구 회기역에서 119 구급대원들이 체온이 높고 의사소통이 어려운 노인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안치영 기자)
4일 서울 동대문구 회기역에서 119 구급대원들이 체온이 높고 의사소통이 어려운 노인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안치영 기자)
발견 이후에도 문제가 남는다. 환자가 자신의 이름과 주소를 말하지 못하면 경찰과 구급대가 신원과 보호자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경찰이 신원 확인을 위해 지문 사전등록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지난해 65세 이상 치매 환자 약 95만명 가운데 등록 환자는 절반도 안되는 약 40만명(2025년 6월 기준)에 그쳤다.

예방과 이송 체계를 함께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치매 환자의 지문 사전등록을 확대할 뿐만 아니라 보호자 연락처와 복용 약 등 응급진료에 필요한 정보를 소방·경찰·치매안심센터가 신속하게 확인할 수 있는 연계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고열과 의식 저하가 확인된 경우에는 신원과 보호자 확인을 병행하되 응급처치와 병원 이송을 우선하는 원칙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최 센터장은 “치매 환자 곁에는 돌봐줄 사람이 있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면서도 “한 사람이 온전히 환자에게만 매달리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이어 “보호자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돌봄 지원 뿐만 아니라 관리망에서 벗어난 환자를 빠르게 발견하고 치료로 연결하는 체계를 촘촘히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