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처럼 자체 화물로 정기항로를 채울만큼의 물동량 규모를 갖추지 못한 만큼 세계 2위 환적항인 부산항을 아시아 화물이 모이는 거점으로 키우는 한편, 조선·해양금융 등 한국이 강점을 가진 산업을 결합하는 것이 승부처로 꼽힌다.
이에 따라 22일로 예정된 첫 시범운항은 단순히 북극항로를 한 차례 오가는 것을 넘어 향후 상업운항의 기반을 만드는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시범운항 핵심은 ‘데이터’…“글로벌 표준으로 만들어야”
11일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시범운항에 나서는 선박은 팬스타라인닷컴이 HMM으로부터 매입한 2700TEU(1TEU=20피트 컨테이너)급 컨테이너선 ‘팬스타 아크로호’다. 부산항을 출발해 북극해를 거쳐 폴란드 그단스크와 네덜란드 로테르담, 독일 함부르크, 영국 펠릭스토우를 기항한 뒤 되돌아오는 항로다. 수에즈운하를 거치는 기존 아시아-유럽 항로보다 거리는 약 8000㎞(36%) 단축된다.
(그래픽= 문승용 기자)
컨테이너 정기 서비스를 시작한 중국도 같은 이유로 데이터를 쌓고 있다. 다만 국제적으로 신뢰받는 표준 정보로 인정받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율성 한국해양대 교수는 “공신력 있는 국제 표준 정보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중국 데이터가 아니라 우리 데이터일 것”이라며 “운항 데이터를 표준화하고 개방해 공신력을 갖추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북극이사회 옵서버국인 한국이 단독으로 움직이기보다 참여국들과 함께하는 모양새를 갖춰야 힘을 받을 수 있다고도 조언했다.
◇부산항, 북극항로 진입 전 마지막 대형 항만 ‘강점’
물동량 규모만 놓고 보면 한국은 중국에 크게 밀린다. 세계 10대 항만 상당수가 중국에 몰려 있고, 중국은 유럽을 오가는 자국 화물만으로도 정기 서비스를 채울 수 있다.
한국은 부산항의 환적 경쟁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벌크선이나 탱커는 생산지에서 소비지로 직접 이동하는 경우가 많지만 컨테이너선은 여러 지역의 화물을 모으고 다시 나누는 환적 네트워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추정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컨테이너 물동량은 3209만TEU(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로 수입(-0.7%)과 수출(-1.3%) 물량은 줄었지만 환적(3.8%)만 늘어났다.
윤희성 한국해양대 교수는 “부산항은 세계 2위 컨테이너 환적항이자, 북극항로에 들어가기 전 거치는 마지막 대형 항만”이라며 “북극항로를 이용하는 컨테이너 화물의 집화·환적 거점이 될 수 있고, 우리 선박이 출항할 때 화물을 확보하는 측면에서도 유리하다”고 말했다.
부산항의 경쟁력을 단순한 화물 환적에만 국한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극지 운항에 필요한 선박 건조부터 보험과 금융, 선박수리와 연료 공급까지 연관 산업을 함께 키워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금융과 보험이 승부처로 지목된다. 극지 운항은 일반 항로보다 사고 위험과 불확실성이 커 보험료와 안전관리 비용이 크다. 이는 화주와 선사의 북극항로 진입을 가로막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시범운항을 통해 극지 적하보험 운영 방식과 화물 온도 관리 대책 등 정보를 쌓고 이를 검증하면 향후 북극항로 전용 보험상품과 금융서비스를 설계하는 기초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정부도 문현금융단지의 한국해양진흥공사와 2028년 개원 예정인 부산해사법원을 연계해 선박금융·해상보험·해사중재를 한 도시에서 처리하는 해양지식서비스 생태계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러시아와 협력 ‘필수’…대러 제재 문제 풀어야
다만 한국이 북극항로 상업화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할 현실적인 장벽이 문제로 손꼽힌다.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경제제재다. 항해 과정에서 러시아 당국의 허가가 필요하고 운항 여건에 따라서는 쇄빙선 지원을 받을 필요가 있어서다. 항로·해빙·기상 등 각종 운항 정보 역시 러시아 측과의 협력이 불가피하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지급이나 러시아와 거래가 서방의 제재와 충돌할 가능성을 따져 봐야 한다. 이 때문에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미국 등 서방국과 막판 조율을 이어가고 있다.
한종길 성결대 교수는 “중국은 메이저 선사가 참여하지 않아 서방 제재를 크게 신경 쓸 이유가 없지만, 한국은 그럴 수 없다”며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대러 제재를 무시한 채 운항하는 것은 우리 해운 전체를 리스크에 빠뜨리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이건 러시아가 풀어주는 게 아니라 미국이 풀어줘야 하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도 “러시아 눈치만 봐야 하는 게 아니라 미국의 안전성 인증도 받아야 해 여러 나라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라면서도 “러시아가 중국 의존도 확대를 견제하기 위해 우리나라와 파트너십을 이어가려고 노력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