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국립공원 천왕봉 바위 글씨. (사진=국립공원공단 제공)
이 석각은 일제강점기 지리산에서 의병을 조직하고 활동했다고 알려진 권상순 의병장 후손이 2021년 9월 발견하고 2023년 11월 국립공원공단에 조사를 의뢰하면서 존재가 알려졌다.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국립공원 내 확인된 근대 이전 석각 194개 중 글자가 가장 많고 제일 높은 곳(해발고도 1900m대)에 있는 석각이다.
국립공원공단 연구진은 글자가 마모돼 전문을 온전히 파악하기 힘든 이 바위 글씨를 3차원 스캔 작업으로 조사하고 전문을 탁본한 뒤 전문가에게 판독을 의뢰했다. 그 결과 구한말 문인 묵희(1875~1942)가 짓고 권륜이 써 1924년에 새긴 것임을 확인했다.
이 글은 중국 고전들에 나오는 오랑캐 침략 관련 고사를 언급한 뒤 “오늘날 천지가 크게 닫혔다고 하는데, 다시 열리는 기미는 언제쯤일까? 오랑캐를 크게 통일하여 문명이 밝게 빛나고 넓게 퍼져가는 날을 반드시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울분과 원통함을 금치 못하고서 피를 토하고 울음을 삼키며 이 남악(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만세 천왕의 대일통을 기록한다. 아! 슬프다”라며 나라 잃은 슬픔을 비통해하는 말로 맺고 있다.
이 글을 국역한 최석기 한국선비문화연구원 부원장은 “천왕을 상징하는 지리산 천왕봉의 위엄을 빌어 오랑캐(일제)를 물리쳐 밝고 빛나는 세상이 오기를 갈망하면서 나라를 빼앗긴 울분을 비분강개한 어조로 토로한 것이 석각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산국립공원 백운대 바위 글씨. (사진=국립공원공단 제공)
정재용 선생은 “기미년 2월 10일 조선독립선언서를 작성한 것은 경성부 청진정(현재 종로구 청진동) 사람인 육당 최남선이니 경인년(1890)에 태어났다” “기미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만세도창한 것은 황해도 해주 수양산 사람인 정재용이다. 병술년(1886)에 태어났다”고 썼다. 3·1 운동 이후 새긴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상황을 잊지 않고, 훗날 와전되지 않도록 사실만 기록했다고 한다.
의정부시 호원동 석굴암에서는 백범 김구 선생의 숨결을 만날 수 있다. 석굴암은 김구 선생이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기 전 몸을 숨겼던 은신처다. 해방 후 1948년 이곳을 다시 찾은 김구 선생이 남긴 친필 글씨를 받아 1949년 언론인 남상도 등 8명이 바위에 새겼다. 당초 1949년 6월 26일 제막식을 열 예정이었으나 안타깝게도 당일 선생이 서거하면서 백범의 마지막 유묵이자 광복의 역사문화자원으로 전해지고 있다.
의정부시 호원동 석굴암 김구 선생 필적 (사진=국립공원공단 제공)
주대영 국립공원공단 이사장은 “광복절을 맞아 국립공원의 자연과 함께 그 속에 담긴 독립의 역사를 되새기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