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도연 할머니 생전 모습. (사진=의령군 제공)
화장을 마친 부부의 유골은 같은 날 경상국립대학교 의과대학 생명존중실에 나란히 안치됐으며, 앞으로 30년간 이곳에 모셔진다.
군에 따르면 공 할머니는 2023년 9월 13일 향년 82세로 별세했다. 유족들은 고인의 뜻에 따라 시신을 경상국립대학교 의과대학에 기증했다. 앞서 2022년 4월 세상을 떠난 남편 박 씨 역시 시신 기증의 뜻을 밝혀 경상국립대학교 의과대학에 몸을 기증했다. 두 사람의 시신은 지난 7월 말까지 약 3년여간 의대생 해부학 실습을 비롯해 교수진의 임상 연구에 활용됐다.
50년 넘게 이어진 봉사인생이 별세 이후에도 이어진 것이다.
유족들은 이제야 부모를 편히 떠나보낼 수 있게 됐다는 마음을 전했다. 장남 박해곤 씨는 “부모님을 떠나보낸 뒤에도 자식으로서 늘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며 “이제 두 분이 하실 일을 모두 마쳤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놓이면서도 마지막으로 보내드리는 것 같아 서운한 마음도 크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정말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며 “오랫동안 어머니를 기억해 준 군민들께도 감사드린다”고 했다.
공도연 할머니 생전 모습. (사진=경남도 제공)
공 할머니는 17살에 천막집에서 시집살이를 시작해 이웃에게 밥을 얻어먹을 정도로 가난에 허덕였다. 낮에는 남의 집 밭일과 봇짐 장사를 하고 밤에는 뜨개질을 해 내다 팔며 살림을 일으켰다. 형편이 조금 나아진 30대부터는 본격적인 사회활동에 나섰다.
1970년대 초 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 새마을부녀회장을 맡아 마을 내 30가구를 이끌고 농한기 소득 증대를 위한 사업에 뛰어들었다. ‘쌀을 절약하자’는 절미(節米) 운동을 이끌며 마을 수입을 늘렸다. 사비를 털어 마을 간이 상수도 설치와 지붕 개량 사업을 도왔다. 마을 주민들은 공 할머니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1976년 송산국민학교에 ‘사랑의 어머니’ 동상을 세워 화답했다.
1985년에는 의료 시설이 없어 고통받는 주민들을 위해 대지 225㎡를 직접 사들여 군에 기탁해 송산보건진료소를 세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공 할머니는 50년 세월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불우이웃 돕기 성금 기부, 쌀 지원 등을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 모두 자비로 했다고 한다. 긴 세월 누적돼 금액으로는 환산조차 되지 않는다고 한다.
예순을 넘어서는 경로 봉사에 주력했다. 노인 복지 시설을 찾아 매년 직접 농사지은 쌀로 떡국을 끓여 대접했다. 폐지와 공병을 판 돈으로 노인회에 전달했다. 여든이 넘어서는 35㎏에 불과한 노쇠한 몸으로 리어카를 끌며 나물과 고물을 내다 판 돈을 불우이웃을 위해 기부했다.
공 할머니는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모든 정부에서 60여 차례 표창을 받았다. 지난 2020년에는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훈했다. 국민훈장은 정치·경제·사회·교육·학술 분야에 공적을 세워 국민의 복지 향상과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되는 포상이다.
당시 포상금 50만 원에 사비 50만 원을 보태 또다시 마을에 내놓으며 지역사회에 귀감이 됐다.
공도연 할머니가 평소 적은 '봉사기록일기' (사진=의령군 제공)
공 할머니 장녀 박은숙 씨는 “엄마에게 봉사는 삼시 세끼 자식 밥을 챙기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가족을 돌보듯 정말 많은 사람을 거두고 살았다”며 “사람들이 그런 엄마를 오래 기억해 주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박 씨는 또 “얼마 전 꿈에 엄마와 아버지가 깨끗한 옷을 입고 함께 나왔다”며 “돌아가시고 2년 넘게 차가운 병원에 계셨는데 이제 마지막 봉사까지 다 마치고 좋은 곳으로 가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엄마의 10%라도 닮고 싶다”며 “그것이 엄마의 뜻이라면 우리도 그렇게 살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공 할머니는 오랜 세월 이어온 봉사의 순간들을 ‘봉사일기’에 기록했다.
“가난해 보지 못한 사람은 가난의 아픔과 시련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처럼 잘살아 보겠다는 강한 신념이 있다면 반드시 방법이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없는 자의 비애감을 내 이웃들은 느끼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오태완 의령군수는 “공도연 할머니는 평생 이웃을 위한 나눔을 삶으로 보여주시고 마지막까지 봉사로 삶을 완성하신 분”이라며 “고인이 보여준 한결같은 이웃 사랑은 우리 사회가 오래 기억해야 할 참된 봉사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령군민과 함께 그 뜻을 오래도록 기억하겠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