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소주.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2024.2.12 © 뉴스1 김진환 기자
'오늘 마시고 죽자'로 대변되는 음주 문화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소주와 맥주, 막걸리 등 주요 주종 출고량이 일제히 감소하면서 지난해 국내 주류 출고량이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300만kL(킬로리터) 아래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과 자기관리를 중시하는 문화가 확산한 데다 코로나19를 거치며 회식 등 단체 술자리가 줄면서 음주 빈도와 양이 감소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25일 국세청 국세통계포털(TASIS)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주류 출고량은 298만7000kL로 집계됐다. 연간 출고량이 300만kL 아래로 줄어든 것은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292만2000kL) 이후 처음이다. 10년 전인 2015년(380만4000kL)과 비교하면 21.5% 감소했다.
지난해 주요 주종의 출고량도 일제히 줄었다. 이 기간 맥주 출고량은 151만9000kL로 전년 대비 7.2% 감소하면서 3년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희석식 소주 출고량도 79만3000kL로 3년 연속 줄었고 탁주 역시 31만8000kL로 5년 연속 감소했다.
소비자들의 음주 빈도와 음주량도 감소 추세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2025 주류산업정보 실태조사'에 따르면 주류 소비자의 월평균 음주 빈도는 8.8일, 음주일 평균 음주량은 6.6잔으로 2023년 조사 당시 9.0일, 6.7잔보다 각각 감소했다.
"술 몇 짝씩 나갔는데"…회식도 술자리도 줄었다
전날(24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 인근에서 만난 16년 차 주류 도매업자 이 모 씨는 "요새 술들을 잘 안 드신다"며 "회식을 하더라도 술을 안 드시는 분들이 많고 회식 자체도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가가 예전 같지 않다"며 "직장인 상권도 매출이 많이 줄었다"고 했다.
이 씨는 "경기도 안 좋고 코로나19 이후 회식 문화가 없어지기도 하는 등 사회적인 분위기 자체가 술을 안 마시는 쪽으로 가는 것 같다"며 "회사에서도 회의할 때 보면 (이러한 양상이) 국내에 한정된 게 아니라 전세계적인 추세라고들 한다. 특히 요즘 2030 세대가 예전만큼 술을 안 마신다"고 말했다.
한양대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송경식 씨는 주류 판매량이 많이 줄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송 씨는 "이 동네에서 장사한 지 오래됐는데 (요즘이) 최고로 힘들다"며 "20년 전과 비교하면 술 판매량이 절반 정도라고 본다"고 했다.
과거에는 학생들이 단체로 모여 술을 마시는 자리가 흔했지만 이제는 오후 8~9시를 전후해 손님이 끊기고 2차·3차로 이어지는 술자리도 거의 사라졌다는 설명이다. 송 씨는 특히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매출이 3분의 1로 줄었다고 했다.
서울 광진구 건국대 인근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안인선 씨(79)도 주류 소비 감소를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안 씨는 "요즘 대학생·직장인들이 술을 잘 안 마신다"며 "예전에는 술이 몇 짝씩 나갔는데 요즘은 저녁에 한 짝도 안 나갈 때가 있다"고 말했다.
건강·자기관리 챙기는 2030…"술자리도 선택"
대학생·직장인들 사이에서도 음주량뿐 아니라 술자리 문화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양대 재학생 김태영 씨는 과거에 비해 술을 마시는 분위기가 줄었다고 했다. 김 씨는 "건강을 많이 챙기고 자기관리가 대세인 시대라 그런 것 같다"며 "밥 약속은 많은데 술 약속까지는 잘 안 잡는 것 같다. (문화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은 잘 마시는 사람은 마시고 안 마시는 사람은 안 마시는 식으로 자유도가 생겼다"고 부연했다.
건국대 재학생 서 모 씨(23)도 "술 마시는 게 많이 줄었고 거의 안 마시다시피 한다"며 "다음 날 일정에도 영향을 주고 술을 마시면 운동을 제대로 못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서 씨는 "전체적으로 술 마시는 비율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면서 "소주보다는 위스키나 와인을 찾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도 했다.
또 다른 건국대 재학생 최 모 씨(21·여)는 "소수 인원이 만날 때는 하이볼이나 도수가 낮은 술을 많이 마시는 것 같다"면서도 "여전히 전체 술자리에서는 소주나 막걸리를 많이 마시는 편"이라고 했다.
30대 직장인 김 모 씨는 "회식 횟수 자체도 줄었지만 점심 회식처럼 술 없는 회식을 많이 하는 편"이라며 "저녁 회식을 하더라도 1차까지만 가고 끝내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음주량 줄었지만 취향은 세분화…"다품종소량생산 대응해야"
다만 음주량은 줄이는 대신 취향에 맞는 술을 선택해 즐기는 소비는 확산하고 있다. 저도주와 무알코올 맥주, 하이볼 등이 시장을 넓히는 가운데 위스키와 증류식 소주, 전통주 등 취향을 반영한 주종을 찾는 수요도 늘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특히 술을 마시는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고 봤다. 이 교수는 "예전에는 회식이나 모임이 중심이 되고 술이 이를 매개하는 역할을 했다면 지금은 술 자체의 맛이나 다양한 조합을 즐기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소주·맥주·막걸리 등 전통적인 주류 소비가 감소하는 반면 하이볼이나 무알코올·저도주 제품이 성장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소비자 취향이 세분된 결과라고 봤다. 이 교수는 "주류업체도 소비자들의 다양한 취향에 맞춰 여러 제품을 시도하고 개발할 필요가 있다"며 "앞으로는 다품종소량생산 방식으로 소비자들의 세분된 취향에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ksy@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