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1 윤주희 디자이너
#중앙대에서 교양 한문 수업을 듣던 한 학생이 한문 고전 문구와 감상문을 수기로 다섯 장이나 작성하고도 0점을 받았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이 공자의 말이라고 알려준 내용을 별도의 확인 없이 사용했지만, 실제로는 공자가 한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4학년 김나영 씨(21)는 지난 학기 사회 문제를 다루는 조별 보고서를 작성하다 한 팀원이 제출한 글을 한참 들여다봐야 했다. 분량은 충분했지만 같은 말이 반복됐고 팀이 정한 비판 주제에서도 벗어나 있었다. 김 씨는 AI가 쓴 글이라고 느끼면서도 직접 물어볼 수 없어 팀원들과 해당 부분을 모두 수정했다고 한다.
2일 대학가에 따르면 생성형 AI가 대학 과제와 조별 활동에서 당연하게 쓰는 도구로 자리 잡으면서 이른바 '딸깍'(몇 번의 클릭만으로 AI 결과물을 얻는 행위)으로 만든 과제를 별다른 검토 없이 제출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AI 답변 놓고 갑론을박…검증·재작성은 팀원 몫
대학가에서는 서로 의견을 교환해야 하는 조별 과제에서도 AI가 만든 결과물을 그대로 가져오면서 다른 팀원들이 이를 검증하고 다시 작성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3학년 봉정현 씨(24)도 지난 학기 조별 과제에서 다른 팀원이 조사한 자료를 확인하다 출처가 불명확하고 과제와 무관한 내용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을 발견했다.
봉 씨는 "AI를 이용한 자료라고 의심해 추가 조사를 요청했고 결국 다른 자료를 받았다"며 "AI가 만들어준 자료를 사실이라고 가정하거나 스스로 수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직접 선행 연구를 찾고 관련 수식을 적용해야 하는 공학 수업에서도 각자 AI에 답을 맡기면서 혼선이 빚어지는 일도 있다고 한다.
경희대 신소재공학과 4학년 윤민식 씨(24)는 캡스톤 디자인 프로젝트에서 팀원들과 AI를 활용해 선행 연구를 찾고 관련 수식을 계산했다. 그러나 사용하는 AI와 질문 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답변이 나왔다.
윤 씨는 "한쪽에서 'AI가 그렇다던데'라고 하면 다른 쪽에서는 '내 AI는 반대라던데'라고 했다"며 "답변이 제각각인 데다 오류까지 섞여 팀원들과 소통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과제의 완성도와 작업 속도는 높아졌지만 직접 고민하는 과정은 줄었다는 말도 나온다.
봉 씨는 "예전보다 과제의 질은 올라갔지만 생각의 질은 낮아졌다"며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줄어든 것 같고, 이제는 AI가 나보다 더 정확할 것이라는 생각부터 든다"고 말했다.
AI로 쓴 과제물 그대로 제출…과제 평가하는 교수도 골머리
AI에 의존하는 모습은 과제를 채점하는 교수들에게도 그대로 드러난다. AI를 이용해 자기 생각을 발전시킨 과제와 AI가 만든 결과물을 그대로 제출한 과제 사이에는 수준 차이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앞서 공자의 말이라고 잘못 알려진 문구를 활용한 한문 과제에 0점을 준 심호남 중앙대 교양대학 교수는 클로드(Claude)가 만든 파일이나 마누스 AI가 구성한 틀을 그대로 제출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했다.
심 교수는 "많은 과제를 받아보다 보니 AI 특유의 형식이나 문체가 눈에 들어온다"며 "자기 생각을 써야 하는데 누가 봐도 AI가 해준 내용을 그대로 제출한 과제는 좋은 평가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AI를 이용해 겉으로 완성도 높은 과제를 제출하는 것과 학생의 실제 학업 성취도는 별개이기도 하다.
박주형 경인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보고서나 독후감을 제출하라고 하면 학생의 70~80% 이상은 AI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럴듯한 결과물은 제출했지만 정작 학습은 이뤄지지 않은 '가짜 학습'이나 '인지의 외주화' 현상이 상당히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 10곳 중 4곳만 가이드라인…"평가 방식 바꿔야"
대학과 정책 차원의 대응은 아직 과도기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올해 대학 총장 140명을 조사한 결과 생성형 AI 활용 정책이나 가이드라인을 공식 채택한 대학은 56곳으로 40%였다.
교육부도 지난달 '대학 AI 활용 윤리 가이드라인'을 배포했지만 모든 수업에 같은 기준을 적용하기는 어렵다. 보고서 작성부터 코딩과 실험 설계까지 과목별로 AI 활용 방식이 달라 구체적인 허용 범위와 평가 기준은 결국 담당 교수가 정해야 한다.
AI 사용을 학생의 윤리 의식에만 맡기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AI의 도움을 받은 결과물과 그렇지 않은 결과물의 완성도 차이가 학점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이재성 중앙대 AI학과 교수는 "AI의 도움을 받은 결과물과 받지 않은 결과물은 질적으로 큰 차이가 나고, 이는 학점으로 연결된다"며 "학생들의 윤리의식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학생들이 자기 힘만으로 무언가를 해올 것이라고 전제하는 과제 방식은 더 이상 성립하기 어렵다"며 "이론은 집에서 학습하고 강의실에서는 프로젝트를 하거나 문제를 푸는 '플립드 러닝'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on@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