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21일 금융감독원 퇴직연금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국내 42개 퇴직연금 사업자(증권·보험·은행)들의 DC(확정기여)형 원리금 비보장 상품 평균 수익률은 21.6%로 집계됐다. 직전 분기(3분기) 평균 수익률인 15.9% 대비 약 5.7%포인트 상승했다. 이 기간 증권사 중 가장 수익률이 높은 곳은 24.62%를 기록한 현대차증권이었다. 보험사 중에선 43.42%의 신한라이프생명보험, 은행 중에선 23.07%의 iM뱅크가 수익률이 가장 높았다.
원리금 보장형이란 예·적금, 국채 등 원리금이 보장되는 방식으로 투자돼 안정성이 높은 방식이다. 반면 실적배당형은 직접투자 등 원리금이 보장되지 않는 방식으로 투자하는 것이다. 최근 국내 증시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상장지수펀드(ETF), 채권 등 실적배당형 자산 비중이 높은 포트폴리오가 수익률을 높였다. 위험자산 편입 비중이 낮은 원리금 보장 상품의 수익률을 보면 현격한 차이를 체감할 수 있다. 같은 기간 퇴직연금 사업자들의 원리금 보장형 수익률은 2~3%대에 맴돌며 4%를 채 넘기지 못하고 있다.
DC형과 마찬가지로 운용 주체가 가입자인 개인형(IRP) 퇴직연금에서도 흐름은 유사했다. IRP형 퇴직연금 원리금 비보장 상품의 평균 수익률이 20% 내외이나 원리금 보장 상품의 평균 수익률은 3% 내외에 그치고 있다.
원리금 비보장 상품의 수익률이 올라간 건 국내 증시가 가파르게 상승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코스피는 지난해 4분기 동안 약 23% 상승하며 직전 분기 상승률(11.49%)을 두 배 이상 웃돌았다.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50개 종목으로 구성된 ‘코스피 50’의 지난해 4분기 상승률은 32.9%였다.
◇‘고수’들 최근 1년 수익률 38.8% 압도적
이른바 퇴직연금 ‘고수’들의 수익률을 뜯어보면 원리금 보장형 수익률과의 간극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최근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은 지난해 6월 말 기준으로 3년 이상 계좌를 유지하면서 적립금 잔고가 1000만원 이상인 DC 가입자를 선별해 분석했다.
금감원은 선발한 가입자들을 5개 연령대별(30대 미만·30대·40대·50대·60대 이상)로 구분하고 수익률을 기준으로 상위 100명씩을 뽑아 총 1500명을 퇴직연금 고수 그룹으로 지정했다. 그 결과 퇴직연금 고수들의 최근 1년간 수익률은 38.8%, 최근 3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16.1%로 가입자 평균(1년 4.2%, 3년 4.6%)의 3.5~9.2배를 상회했다.
고수들은 모든 연령대에서 펀드(ETF 포함), 채권과 같은 실적배당형 상품에 대한 투자 비중이 79.5% 수준으로 매우 높았다. 금융감독원은 “대기성 자금 비율도 8.6% 수준으로 높게 나타났는데, 이는 시장 상황에 따라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여유 자금도 일부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투자 습관에서 비롯된 차이로 고수들은 주식형, 혼합형 펀드 등 적극적으로 자산배분 전략에 나서며 수익률을 챙기고 있다. 그러나 나머지 대부분의 가입자들은 원리금 보장 상품에 자동으로 가입된 상태로 수년간 손을 놓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전히 원리금 보장 선호…제도 개선·투자자 교육 필요
그럼에도 퇴직연금 시장에서는 여전히 실적배당형보단 원리금 보장형 상품이 선호되고 있다. 2024년 말 기준으로 퇴직연금 시장은 430조원 규모로 성장했지만 실적배당형 비중은 20%가 채 되지 않았다.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가 지난해 발표한 ‘2024년 퇴직연금통계’를 보면 퇴직연금 총 적립금액은 431조원으로 전년 대비 12.9% 증가했다. 운용 방식별로 보면 원리금 보장형이 74.6%, 실적배당형 17.5%, 대기성은 8.0%를 차지했다.
결국 제도 개선과 투자 교육 실시를 통해 실적배당형으로의 유인을 높여 수익률을 제고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와 관련해 당국은 계좌 자산의 30%를 예·적금이나 채권 등과 같은 안전자산(원리금 보장형)에 투자해야 한다는 현행 ‘30%룰’을 완화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현행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옵트 인’(opt-in) 방식을 ‘옵트 아웃(opt-out)’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가입자가 직접 투자 상품을 선택해야만 운용이 시작되는 옵트 인 방식에선 가입자의 선택이 없을 경우 적립금이 운용되지 않고 방치될 수 있다. 이에 자동으로 운용 상품이 지정되고 운용되다가 가입자가 희망할 시 언제든 다른 금융 상품으로 갈아탈 수 있도록 하는 옵트 아웃을 통해 실적배당형 선택을 유도할 수 있다는 의미다. 중간 정산·해지 요건을 강화해 중도 인출을 제한하는 것도 방법으로 거론된다.
근본적으로는 가입자의 투자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경선 한국퇴직연금개발원 회장은 “현재는 매년 한 시간씩 형식적으로만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기대 효과를 바라기 어렵다”면서 “가입자가 입직·퇴직할 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교육과 상담을 해 줄 수 있는 기관과 인프라가 부족한 상태다. 정부 차원에서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