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진의 256억’과 유니콘의 ‘탈출로’…풋옵션에 걸린 운명들

주식

이데일리,

2026년 2월 28일, 오후 06:30

[이데일리 마켓in 허지은 기자] “돈은 포기할테니, 아이들을 놓아달라”

최근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가 하이브를 향해 던진 승부수는 자본시장의 문법을 뒤흔들었다. 자신에게 보장된 256억원 규모의 풋옵션(주식매수청구권) 권리를 포기하는 대신, 뉴진스 멤버들을 향한 소송을 취하해달라는 파격 제안을 한 것이다. 누군가에겐 평생의 부로 이어질 수 있는 풋옵션이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협상 카드로 변모한 순간이다.

엔터업계의 풋옵션이 애정과 신뢰를 담보로 한 결탁의 증표였다면, 수조원대 몸값의 유니콘 기업들에게 풋옵션은 양날의 검이다. 생존을 위한 구명조끼이자, 때로는 숨통을 죄는 올가미가 되는 풋옵션의 문법들을 짚어봤다.

[나노 바나나(Nano Banana)를 활용한 이미지]


◇안전판인가, 족쇄인가…풋옵션의 두 얼굴



풋옵션의 본질은 간단하다. 주식을 정해진 가격에 되팔 수 있는 권리다. 투자자들에게는 사업이 망해도 원금은 챙겨준다는 확신을 통해 거액의 자금을 끌어오는 지렛대가 된다. 기업 입장에선 든든한 우군을 얻기 위해 제공하는 안전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안전판은 유효기간을 넘기는 순간 경영권을 위협하는 상환 요구서로 돌변한다. 2018년 SK스퀘어는 11번가의 성장을 위해 재무적 투자자(FI)로부터 5000억원을 투자받으면서 5년 내 상장 실패 시, 원금에 연 3.4% 이자를 붙여 주식을 되산다는 풋옵션을 걸었다.

이후 상장이 기약없이 밀렸지만 SK스퀘어는 풋옵션 대금을 물어줄 현금이 부족했고, 결국 풋옵션 이행 포기를 선언했다. FI들은 드래그얼롱(동반매각청구권)을 발동해 대주주인 SK스퀘어의 지분까지 끌어와 회사를 강제로 시장에 매물로 내놨다.

풋옵션 행사 가격을 두고 10년 넘게 법적 공방을 이어온 교보생명도 있다. 2012년 대우인터내셔널이 보유하던 교보생명 지분을 FI들에 팔면서, 당시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2015년까지 상장이 안 되면 내가 주식을 되사주겠다”는 풋옵션 계약을 걸었다. 이후 상장이 약속대로 되지 않자 FI는 2018년 풋옵션을 행사했지만, 신 회장 측이 FI가 요구한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고 맞섰다.

해당 갈등은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를 넘어 형사 소송까지 번졌다. 신 회장 측은 FI와 회계법인이 공모해 가격을 부풀렸다고 고발했고,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교보생명은 사법 리스크에 갇혀 상장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11번가가 풋옵션을 이행하지 못한 대주주가 경영권을 송두리째 잃게 되는 시나리오를 보여줬다면, 교보생명의 사례는 가격표 하나를 두고 10년 넘게 기업의 발목을 잡는 무한 소송의 늪을 보여준다. 출구가 막힌 풋옵션은 더 이상 안전판이 아니다. 기업의 미래를 저당 잡는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상장은 거들 뿐…예비 유니콘의 ‘질서있는 퇴장’



최근 대형 IPO 딜에선 풋옵션을 대하는 방식이 진화하고 있다. 연내 상장 예비심사 청구를 앞둔 조단위 대어 A기업의 초기 투자자들은 상장 결과와 무관하게 IPO 이전 풋옵션을 행사해 엑시트(투자금 회수) 계획을 세우고 있다. 후속 투자자들이 해당 지분을 받아주는 일종의 ‘세컨더리 딜’ 구조다.

풋옵션이라는 확정 수익을 근거로 기존 주주는 명예롭게 퇴장하고, 신규 투자자는 상장 직전 우량 지분을 대량 확보하는 세대교체가 일어나는 구조다. 상장은 이 과정에서 수익을 더 얹어주는 보너스일 뿐, 엑시트의 유일한 전제 조건이 아니게 된 것이다.

하이브 사례처럼 법적 공방으로 점철되거나, 11번가처럼 파국으로 치닫지 않고 A기업처럼 조용히 손바뀜이 일어나는 딜은 IB 업계에서 가장 고도로 설계된 성공작으로 꼽힌다. 기존 주주의 풋옵션 리스크를 해결해주면서도 기업의 성장을 이어갈 새 파트너를 찾는 능력이 곧 기업의 실력이 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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