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 막히자 투자자와 전쟁 발발…대기업 자금조달 관행 '균열'[위클리IB]

주식

이데일리,

2026년 3월 22일, 오전 12:21

[이데일리 마켓in 지영의 기자] 정부가 중복상장을 사실상 차단하는 강도 높은 규제 기조를 내세우면서, 대기업과 재무적 투자자(FI) 간 이해관계 충돌이 가시화되고 있다. 그동안 자회사 기업공개(IPO)를 전제로 형성돼 있던 투자·회수 구조가 흔들리면서 투자금 반환을 둘러싼 협상이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조치가 단기적으로는 기업과 투자자 간 긴장을 키우는 한편, 중장기적으로는 IPO 중심의 자금조달 관행을 재편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이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자본시장 안정과 정상화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중복상장' 막히자 계약이 칼날로…FI-기업 충돌 본격화

2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8일 자본시장 간담회를 개최하고 ‘자본시장 체질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주주 가치 보호를 위해 한국거래소 상장 심사 과정에서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는 의견 수렴을 거쳐 관련 상장 규정을 개정하는 등 제도 도입을 추진할 방침이다. 물적분할 후 상장을 통한 이른바 ‘쪼개기 IPO’ 관행에 제동을 걸어 모회사 주주가치 훼손을 막겠다는 취지다.

정책 변화는 기업과 투자자 간에 형성돼 있던 기존 자금 회수 구조에 균열을 내고 있다. 그동안 대기업 계열사 투자는 상장을 통한 회수를 전제로 이뤄져 왔으나, 중복상장이 제한되면서 이 경로 자체가 불확실해진 실정이다.

특히 일정 기간 내 상장을 조건으로 하는 적격상장(Q-IPO) 약정이 포함된 투자 구조에서는 상장이 지연되거나 무산될 경우 풋옵션이나 드래그얼롱 등 계약 조항이 실제로 발동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책 변수로 상장이 막힌 상황에서도 기업은 투자금 상환 압박을 받고, 투자자는 계약 이행을 요구하는 구조가 형성되면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더욱이 IPO를 통해 시장에서 가격이 형성되는 통로가 막히면서, 동일한 지분을 두고도 기업과 투자자 간 기대 가격이 크게 벌어지는 양상이다. 상장이 진행되는 경우 공모가를 측정한 뒤 시장 반응에 따라 자연스럽게 가치가 정리되지만, 현재는 협상을 통해 가격을 정해야 하는 구조로 바뀌면서 양측 간 이견조율이 쉽지 않다는 평가다.

투자자들과의 갈등 조짐이 곳곳에서 엿보이는 가운데, SK에코플랜트에서는 이미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SK에코플랜트는 과거 재무적 투자자 7곳으로부터 구주 매입과 전환우선주(CPS) 투자 등을 통해 총 8000억 원을 유치하며 2026년 7월까지 IPO를 완료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회계 이슈와 중복상장 규제가 겹치며 상장 가능성이 낮아지자 투자자들이 투자금 회수에 나서기 시작했고, SK에코플랜트와 투자자 간 협상이 이어지고 있다. SK에코플랜트 측은 약 1조 원 수준의 지분 매입안을 제시한 반면, 투자자들은 약 1조2000억 원을 요구하며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자금조달 길찾기 분주…'IPO'에 쏠렸던 자금조달 방식 재편

자회사 IPO가 어려워지면서 기업들은 차입 확대나 유상증자, 회사채·전환사채(CB) 발행, 보유 자산을 활용한 유동화 등 다양한 대체 자금조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차입과 채권 발행은 이자 부담을 키우고, 유상증자는 기존 주주 지분 희석으로 이어지는 만큼 비용 증가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자산유동화 역시 일시적인 현금 확보에는 도움이 되지만 향후 수익 기반을 일부 포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특히 지주사 체제에서는 대규모 자본 확충 자체가 쉽지 않아 활용 가능한 수단이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체 수단마다 제약은 있으나, 기업들은 투자 우선순위를 조정하거나 지분 매각, 전략적 투자자(SI) 유치 등을 병행하며 자금 확보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IPO를 통한 회수 경로가 불확실해지면서 투자자들이 보다 보수적으로 접근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그동안 자회사 IPO를 통해 비교적 낮은 비용으로 대규모 자금을 확보해온 구조가 흔들리면서, 향후에는 특정 방식에 의존하기보다 다양한 수단을 병행하는 방향으로 자금조달 구조가 재편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사실상 자회사 IPO를 통한 자금 회수는 어려워진 만큼, 앞으로는 투자 단계부터 IPO에만 의존하지 않는 계약 구조를 짜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라며 "엑시트 경로를 다변화하는 방향으로 투자 관행이 바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