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이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쌓은 만큼 메리츠는 추가적인 주가 상승에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다만 고려아연 단일 기업에만 1조원 가까운 자금이 투입되는 만큼 메리츠 내부에서는 “메리츠스럽지 않은 딜”이라는 회의론도 나온다. 경영권 분쟁 기업에 국내 금융사가 대규모 자금을 쏜다는 점에서 정무적 리스크가 부각될 가능성도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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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적은 동지”…백기사 자처한 메리츠
9일 투자은행(IB) 업계와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기타법인은 고려아연 주식 5144억원 어치를 순매수했다. 같은날 외국인이 5083억원 어치를 순매도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시장에서는 외국계 사모펀드(PEF) 베인캐피탈이 보유했던 지분 41만9082주(약 2.01%)를 메리츠증권이 설립한 SPC가 통째로 받아낸 것으로 보고 있다.
당초 최 회장은 오너 일가 지분을 담보로 메리츠증권으로부터 약 6500억원 규모의 대출을 받아 해당 지분을 직접 인수하려 했으나, 최종적으로는 메리츠가 SPC를 통해 직접 매입하는 방식으로 선회했다. 실제 매수 대금이 예정 대출액보다 적은 것은 최 회장 측이 일부 증거금을 보탰거나, 블록딜(시간외 대량매매) 과정에서 일정 수준의 할인율이 적용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메리츠증권의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화가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 1.3%(전날 종가 기준 약 4290억원) 인수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그룹이 한화솔루션 유상증자 대금 마련 등 현금 확보가 절실한 상황에서, 메리츠가 이 물량을 받아주며 최 회장의 우호 지분을 유지해주는 백기사 역할을 자처한 셈이다. 베인캐피탈과 ㈜한화 지분 인수에 필요한 자금은 약 9400억원으로, 향후 주가 향방에 따라 1조원을 상회할 가능성도 있다.
구체적인 딜 구조는 베일에 가려져 있으나, 업계에서는 총수익스와프(TRS) 혹은 SPC를 통한 단순 지분 매입 후 주주간 계약 체결 가능성을 높게 점친다. TRS 구조라면 메리츠가 지분을 보유하되 의결권은 최 회장이 행사하게 된다. 다만 주가 급등에 따른 수수료 부담을 고려해, 메리츠가 SPC로 지분을 직접 소유하되 최 회장에게 풋옵션(매수청구권)과 우선매수권을 부여하는 방식이 유력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고려아연에만 1조 베팅…고위험 전략 통할까
메리츠의 파격 베팅 배경에는 MBK파트너스와의 해묵은 악연이 자리잡고 있다. 메리츠는 지난 2024년 자금 조달에 난항을 겪던 홈플러스에 1조3000억원 규모 리파이낸싱(재융자)을 제공했지만, 이듬해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하면서 대규모 자금이 묶이는 고초를 겪었다. 메리츠 입장에선 MBK가 내민 손을 잡아준 유일한 금융사를 단일 채권자로 몰아넣고 법원으로 향했다는 배신감이 팽배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메리츠는 차라리 MBK의 적인 최 회장을 확실히 밀어주며 MBK의 전략을 무너뜨리는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아연은 현금 창출 능력이 뛰어나기에 수익성도 높은데다, 최 회장이 경영권 분쟁에서 지더라도 풋옵션이나 지분 담보 등을 촘촘하게 설계해 원금 손실 가능성을 최소화했을 거란 분석이다. 향후 고려아연 그룹 전체의 회사채 발행이나 M&A 등을 메리츠가 독식하게 될 가능성도 열려 있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특정 기업 딜에만 1조원에 가까운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 철저한 리스크 분산을 중시하는 메리츠답지 않다는 지적이다. 특히 메리츠가 향후 ㈜한화 지분까지 인수할 경우 합산 지분율이 3.31%로, 금산분리 법적 상한(5%)에 가까워진다는 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메리츠가 최 회장의 경영권을 지켜주는 방패인 동시에, 언제든 원금을 회수할 수 있는 풋옵션이라는 칼을 쥐게 된 격”이라며 “다만 금산분리 이슈나 금융당국의 정무적 판단은 향후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