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세미나 참가자들은 중복상장의 폐해에는 대체로 공감했지만, 원칙 금지에 따른 자본시장 위축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였다. 기업공개(IPO) 시장 위축은 물론 혁신 기업의 인수합병(M&A) 유인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국가별 중복상장 비율
금융위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상장사간 지분보유 시가총액 기준 중복상장 비율은 한국이 11.2%로, 미국 0.05%, 일본 4.0%, 중국 2.4%, 대만 2.7% 등 주요국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높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축사에서 “그간 지배주주는 실질적 경영권을 유지하면서 사업부문과 계열사를 확대하는 수단으로 중복상장을 쉽게 이용해 온 반면, 일반주주는 자회사 성장의 성과를 공정하게 향유하지 못하고 주가 디스카운트를 감수했다는 비판이 있었다”면서 “중복상장 원칙금지 방안은 새로 도입된 주주 충실의무가 상장 제도에 적용되는 것”이라고 그 의의를 설명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지목된 중복상장 문제는 실제 모회사의 장기 주가수익률 악화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나왔다. 발제를 맡은 나현승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에 따르면 국내 상장 모회사의 자회사가 상장하는 경우 상장 공시 시점부터 상장 전일까지는 양(+)의 주가수익률을 나타냈으나, 상장 이후부터는 음(-)의 주가수익률로 전환됐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수익률이 저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회사 상장이 단기적으로는 기대감을 반영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모회사 주주가치를 훼손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배주주는 추가 출자 없이 자회사의 기업공개(IPO)를 통해 외부 자금을 조달함으로써 지배권을 유지하고 기업집단을 확장한다”며 “모회사 일반주주는 자회사에 대한 직접적인 소유와 통제 권한을 상실하고, 보유한 간접지분도 IPO에 의해 희석된다”고 설명했다.
◇제도의 핵심은 투자자 보호…모회사 일반주주 동의까지 심사
정부는 당장 ‘한국거래소 상장·공시규정’을 손보고 질적심사기준에 ‘중복상장 특례’를 마련해 중복상장 ‘원칙 금지, 예외 허용’ 기조를 반영한단 방침이다.
중복상장 심사 기준으로 거래소는 △영업 독립성 △경영 독립성 △투자자 보호 세 가지를 제시했다. 하나라도 미충족 시 상장을 승인하지 않는다.
핵심은 ‘투자자 보호’ 방안이다. 자회사 상장의 필요성과 자금조달의 불가피성을 따지는 것은 물론, 모회사가 기업설명회(IR)·주주간담회·설문조사 등을 통해 주주와 충분히 소통했는지, 주주 의견을 실제로 반영했는지를 심사한다.
특히 ‘모회사 일반주주의 동의 여부’를 심사 항목에 명시적으로 포함해 지배주주 단독의 의사결정을 원천적으로 견제한다.
모회사 이사회에도 새로운 의무가 부과된다. 이사회는 자회사 상장이 일반주주에게 미치는 영향을 구체적으로 평가하고 공시해야 한다. 예상 디스카운트 효과, 배당 효과, 지분매각 효과 등 자회사 상장에 따른 모회사 주가 증대·희석 효과를 일반주주 관점에서 산출하는 것이 의무화된다. 이어 주주 영향 평가를 바탕으로 보호방안을 마련·공시하고, 주주와의 소통을 거쳐 찬반의견을 결정·공시한 뒤 자회사에 통지해야 한다.
이번 거래소 규정 개정안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주주총회에서 일반주주 과반결의 도입을 검토하거나, 지배주주 의결권을 합산 3%로 제한하는 방안도 제기됐다.
나 교수는 “해외 중복상장의 경우 거래소 심사가 미치지 않는 만큼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적용 등 별도의 제도 보완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더불어 여당도 현재 중복상장시 신주의 25~70% 이상을 모회사 주주에게 의무 배정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논의 중이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개최한 중복상장 제도개선 공개세미나에 참석해 축사 후 개인·기관투자자, 상장사협의회, 증권사, 한국VC협회, 학계·법조계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다양한 의견을 공유했다. 사진=금융위 제공
중복상장이 코리아디스카운트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데는 이견이 적지만, 중복상장 차단은 기업의 자금조달을 막고 투자자의 자금회수에도 걸림돌이 우려된다는 반론도 만만찮았다.
안상준 한국벤처캐피탈협회 부회장은 “벤처·혁신기업이 건전한 사업 개편이나 성장을 목적으로 인수합병(M&A)하는 것은 글로벌하게 활발히 일어나는 일”이라며 “국내에서 벤처기업이 설립부터 IPO까지 통상 14년 이상이 걸리는데 M&A를 통한 성장 경로가 막히면 그 부담이 고스란히 혁신기업에 전가된다”고 우려했다.
자본집약적 산업의 투자 위축 우려도 제기된다. 나 교수는 “중복상장이 전면 규제되면 지배주주는 지배권 희석을 감수해야 하는 모회사 유상증자보다 신성장동력 투자 자체를 포기하는 쪽을 택할 수 있다”며 “예외 허용 등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관적인 원칙적 규제보다 예외와 유예의 묘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거래소는 중복상장 예외 허용 심사에서 자회사 상장의 필요성과 투자자 보호 노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만큼, 충분한 투자자 설득 과정을 거치는 것이 관건이라는 입장을 강조했다.
정부와 거래소는 이번 세미나를 포함한 의견수렴 결과를 반영해 4월 중 거래소 규정 개정안을 마련하고 상반기 중 개정 절차를 완료해 이르면 7월부터 새로운 제도를 시행한다는 로드맵이다.
이 위원장은 “세부적인 기준과 절차에 대해서는 충분히 의견을 수렴하고, 제도 시행 이후에는 개별 심사 결과 도출되는 모범사례들을 통해 가이드라인을 마련·보완해 나가며 기준의 구체성과 예측가능성을 제고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