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상장한 주식시장은 한국 증시보다 규정이 더 세세하거나 촘촘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미국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정보를 투명하게 공시하는 이유는 규정 하나하나가 실제 시장에서 강하게 작동하면서 위반 시 뒤따르는 법적 책임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허위·과장 공시로 판단되면 금융당국의 제재와 과징금은 물론 손실을 본 투자자들의 집단소송과 경영진 개인에 대한 민·형사 책임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 같은 사후 책임 구조가 기업에 정보의 정확성과 완전성을 스스로 확보하도록 만들고 있다.
미국서 찾는 바이오 공시 해법은 ‘자율 뒤 책임’ [K-공시 사각지대②]
◇美 공시, 규정보다 중요한 건 ‘책임’
미국 공시 체계는 기본적으로 시장 자율성을 전제로 한다. 대신 미국 식품의약국(FDA) 심사와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세계 최대 임상시험 정보 공개 사이트(클리니컬트라이얼즈) 등 외부 규제가 정교하게 맞물려 작동한다. 이에 기업은 △공시 △기업활동(IR) △보도자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모든 채널에서 공개하는 정보는 상호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공시 규정은 원칙 중심으로 돌아가되 이를 어길 시 단순 행정절차 이상의 사후 책임을 물어 기업 스스로 보수적으로 움직인다. 우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는 공정공시규정(Regulation FD)이 있다. 공정공시규정이란 상장사가 대중이 아닌 특정 투자자나 애널리스트에게만 회사의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선택적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을 말한다.
2000년 미국에서 해당 규정이 발효되기 전까지 일부 기업 특수 관계자들이 미공개 정부 활용하던 관행을 차단하기 위해 도입됐다. 공정공시규정은 현재 모든 투자자가 동등하게 기업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SEC는 포괄적 사기금지조항(Rule 10b-5)도 강력하게 적용하고 있다. 이는 중요한 사실에 대한 허위 진술이나 누락을 폭넓게 금지한다. 단순히 거짓을 말하지 않는 수준을 넘어 투자자가 오해할 수 있는 정보나 발표 자체를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적용 범위가 넓다.
나스닥 자체 규정도 공시의 신속성과 포괄성을 요구한다. 나스닥 상장 규정 5250(b)(1)에 따르면 상장사는 투자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 정보를 지체 없이 공개해야 한다. 한국거래소가 명문화한 적시 공시와 유사하다. 상장사가 경영상 불이익 등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는 예외가 인정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나스닥 요청이 있으면 관련 정보를 제출해야 한다.
물론 상장사를 보호해 주는 장치 세이프 하버(Safe Harvor)도 있다. 미국 증권소송개혁법(PSLRA)에 규정된 면책 조항 ‘78u-5조 (c)(1)’이 세이프 하버에 해당한다. 기업이 미래예측 진술임을 명확히 구분짓고 실제 결과는 전망과 달라질 수 있다는 주요 리스크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경고문구를 제공했을 경우 책임이 면제될 수 있다. 면책 또한 결국 충분하고 구체적인 공시가 전제돼야 적용받을 수 있다.
반면 국내 코스닥 시장은 사전 규제 중심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상장 심사 단계부터 △사업 모델 △매출 구조 △거래 상대방 등에 대해 당국 관리가 촘촘하게 작동한다. 형식적 요건 충족이 강하다는 의미로 분석된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기업의 자율적 정보 공개를 유도하기보다 규정을 피해 가는 방식을 학습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사전 통제가 강한 대신 사후 책임이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이다.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이나 벌점 부과 등의 제재가 존재하지만 실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최근
삼천당제약(000250) 사례 역시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에 따른 벌점 부과 수준에서 마무리되며 추가적인 제재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투자자 집단소송 역시 미국에 비해 빈도와 승소 가능성 모두 낮다.
제약·바이오업계 관계자는 “국내 공시 규정은 기업 입장에서 헬리콥터 부모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사전 통제가 강하다”며 “상장 예심 단계부터 해외 납품 실적 등을 요구하는 등 기준이 엄격하다 보니 오히려 형식 요건을 충족하는 데 집중하고 내용 측면에서는 편법을 활용하는 기업이 상대적으로 유리해지는 역설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삼천당제약 사태, 미국이었다면…제재 수위 달랐을까
삼천당제약을 둘러싼 공시 논란은 한국과 미국의 제약·바이오 상장사들의 구조적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국내에서는 벌점 부과 수준에서 일단락됐다. 하지만 동일 사안이 미국에서 발생했다면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전개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우선 SEC라면 반복적인 정정 공시와 매출 전망과 실제 실적 간 괴리 등을 근거로 공시 내용이 투자자를 오도했는지 조사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Rule 10b-5 위반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될 수 있다.
대규모 해외 계약의 계약 상대나 수익 구조 등 투자 판단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정보가 충분히 공개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나스닥에서 상장 규정에 따른 추가 정보 제출을 요구받을 수도 있다. 만약 조사 과정에서 표현상 과장이나 허위성이 확인되면 과징금 부과나 경영진 개인의 처벌 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시장 반응에서도 차이가 클 전망이다. 미국에서는 비정상적인 주가 변동 등으로 투자자 손실이 발생하면 로펌들이 집단소송 참여자를 모집하고 사측에 배상금을 요구할 수도 있다.
강력한 제재로 이어진 실제 사례도 많다. SEC는 2020년 미국 캘리포니아 소재 바이오텍 기업 디시전 디아그노스틱스(Decison Diagnostics)와 키스 버먼 최고경영자(CEO)를 허위·오해의 소지가 있는 내용을 보도자료를 통해 반복적으로 공표한 혐의로 제소했다.
디시전 디아그노스틱스는 손가락 채혈 방식의 혈액 검사로 1분 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SEC는 실제 검증된 기술이나 제품 없이 허위 주장을 펼쳤다고 판단했다. 이에 같은 해 4월 주식 거래가 정지됐고 형사 재판에서 CEO가 유죄를 인정받아 징역 7년 형을 선고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