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통신은 23일 대만의 AI 주식 투자 열풍과 이를 부추기는 차입 투자 실태를 심층 보도했다.
지난 4월 11일(현지시간) 대만 타이베이에서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타이베이 101 빌딩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로이터)
26세 무직 남성 앤디 청은 빌린 돈으로 6만 달러(약 9200만원)어치의 대만 기술주를 보유하고 있다. 그는 “어떤 주식이든 사면 돈 번다”고 주변에 서슴없이 권한다.
대만 증시의 급등은 엔비디아에 첨단 반도체를 공급하는 TSMC가 핵심 동력이다. TSMC와 주변 기업군은 세계 최첨단 반도체의 90%를 생산하며 AI 데이터센터 공급망의 정점에 있다. 이 호재에 힘입어 대만 증시는 지난 1년간 100% 이상 올라 영국·캐나다·인도를 추월, 세계 시가총액 5위 시장으로 뛰어올랐다.
투자 열기는 차입으로 이어졌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12개월간 대만 투자자들이 주식 매수를 위해 증권사에서 빌린 신용융자 잔고는 160% 급증해 2000년 닷컴 버블 붕괴 직전의 역대 최고치에 육박했다. 이는 닷컴 버블 말기 1년간의 잔고 증가율(50%)을 3배 이상 웃도는 수치다.
인플루언서 아다 헝(39)도 차입 대열에 합류했다. 팔로어 약 50만명을 보유한 그는 “포모(FOMO·기회를 놓칠 것 같은 두려움)가 정말 날 사로잡았다”며 지난 5월 500만 대만달러(약 2억4300만원)의 대출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수요가 폭증하자 증권사들도 자금 조달에 나섰다. 올해 대만 증권사들의 채권 발행액은 약 12억 달러로, 2025년 전체 발행액의 7배를 넘어섰다.
대만 증시 레버리지 투자 규모 추이. 신용거래융자는 사상 최고치에 근접했고 주식·ETF 담보대출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자료: 대만증권거래소·블룸버그)
차입 투자 열풍은 중앙은행 국채 경매에도 균열을 냈다. 이달 3일 국채 경매에서 매물을 전부 소화할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았는데, 이는 역대 처음 있는 일이다. 투자자들이 채권 매수 자금마저 주식 시장으로 돌린 결과라는 해석도 있다.
주식 거래 관련 투자자 채무불이행(디폴트) 건수는 6월 들어 두 배 이상 증가해 20억 대만달러를 넘어, 2019년 데이터 공개 이래 월간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만 금융감독원 산하 증권선물국은 레버리지 참여 증권사 34곳 중 5월 현재 규제 한도를 위반한 곳은 없으며, 디폴트는 전체 거래의 0.002% 미만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당국은 일부 증권사가 이미 레버리지 비율 축소와 온라인 대출 신청 중단 등 자율 조치에 나섰다고 전했다. KGI증권, 푸봉증권 등 주요 증권사들은 일부 종목의 담보 요건 강화와 금리 인상 조치를 취했음을 인정했다.
◇“과열 명백” vs 골드만 “매수” 의견…실체 논쟁
전문가 시각은 엇갈린다. 대만 국립중앙대 다크란 우 경제학과 교수는 “대만 증시는 명백히 과열됐다”며 “정부가 시장 냉각을 위해 개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갑작스러운 급락이 젊은 투자자들에게 ‘처참한 손실’을 안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프랑스계 은행 나틱시스의 알리시아 가르시아 에레로 아시아태평양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AI 모멘텀이 꺼지면 증권사 압박, 가계 소비 위축, 수출 타격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골드만삭스는 최근 대만 증시에 ‘매수’ 의견을 제시했고, 다수 애널리스트는 추가 상승을 점치고 있다. 강세론자들은 AI 데이터센터 수요가 TSMC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을 뒷받침하는 한, 랠리의 ‘실체’가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 증시도 같은 기간 신용융자 잔고가 94% 늘었다. 대만과 비교하면 증가폭이 낮지만, 정부의 주식 투자 장려 정책이 상승을 부추겼다는 점에서 유사한 구조적 위험을 공유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제 시장의 시선은 AI 투자 사이클의 지속 여부로 향한다. 빅테크들의 AI 데이터센터 투자 속도가 유지되는 한 대만의 랠리를 지지하는 펀더멘털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러나 월스트리트 일각에서 제기하는 AI 투자 둔화론이 현실화된다면, 빚을 끌어다 주식을 산 수백만 대만 투자자들이 감당할 후폭풍은 가늠하기 어렵다.
대만 주식 거래 결제 불이행 금액 추이. 6월 들어 결제 불이행 규모가 급증했다. (단위: 십억 대만달러, 자료: 대만증권거래소·블룸버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