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이데일리 마켓in 허지은 기자] 홈플러스가 기업회생 절차의 분수령인 2000억원 규모 DIP(긴급운영자금) 지원 문제를 두고 노동조합 간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청산만은 막아야 한다며 생존을 위해 사측과 손을 잡은 ‘실리파’ 일반노조와 대주주 책임을 끝까지 물어야 한다는 ‘원칙파’ 마트노조가 정면 충돌하며 노노 갈등이 극에 달한 모습이다.
25일 유통 업계에 따르면 전날 홈플러스 일반노조는 회사와 함께 ‘파산만은 막아달라’라는 제목의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마트노조 역시 같은날 기자회견을 열고 “법원이 던진 청산의 문턱에서 노동조합이 아닌 정부가 오는 29일까지 청산인지 회생인지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양대 노조가 같은날 내놓은 입장문은 판이하게 달랐다. 사측과 함께 쓴 성명서에서 일반노조는 “법원이 정한 기한인 6월 30일까지 긴급운영자금 2000억원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파산을 피하기 어렵다”며 “대주주인 MBK파트너스가 1000억원 규모 연대보증 제공 의사를 밝힌 만큼 최대채권자인 메리츠금융도 즉시 2000억원 긴급운영자금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자금 여력이 없다고 주장하는 대주주 MBK 대신 채권자인 메리츠를 압박하는 모습이다.
반면 마트노조는 여전히 MBK 책임론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다. 손상희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 수석부지부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오늘의 파국을 초래한 MBK파트너스에 대한 책임 추궁은 없이 무책임한 대가를 노동자들이 온몸으로 치러야 하느냐”며 “정부는 김병주 회장을 구속수사하고, 사모펀드 MBK를 처벌하라”고 맞섰다.
앞서 마트노조는 MBK와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고려아연(010130) 노동조합의 연대 성명에 대해 “고려아연 노조 동지들의 연대 성명에 깊은 감사를 표한다”며 “마트노조는 MBK의 먹튀를 저지하고, 사모펀드의 약탈에 맞서 끝까지 연대하고 투쟁할 것”이라고 MBK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인 바 있다.
손상희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 수석부지부장(왼쪽)과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오른쪽) [사진=마트노조]
◇갈라진 홈플러스 노조, 생존의 온도차
홈플러스 노노 갈등의 핵심은 생존 방식에 대한 구성원들의 시각 차이에 있다. 민주노총 산하의 양대 노조는 모두 같은 상급 단체를 두고 있으나, 노조 내 지위와 노선에 따라 대응 방식이 갈렸다.
제1노조인 마트노조는 2013년 테스코 시절 설립됐다. 경영 위기의 근본 원인이 대주주인 MBK파트너스에 있다고 보고, 대주주 압박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김병주 회장의 구속 수사와 대주주 처벌, 그리고 공적 자금 투입을 통한 구조적 해결이 우선돼야 한다며 사측의 회생안에 반대하는 강경 노선을 고수 중이다.
반면 소수노조인 일반노조는 1997년 한국 까르푸 노조가 전신이다. 영화 <카트> , 웹툰 <송곳> 의 실제 배경인 2007년 이랜드-홈에버(구 까르푸) 사태를 거친 이들이 주축으로, 홈플러스가 홈에버를 인수하며 출범한 후 줄곧 고용 안정에 무게를 둬왔다. 급여 체불이 현실화된 상황에서 회생 절차를 통해 회사를 정상화해야한다는 실리적인 판단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반노조는 지난 5월 홈플러스 회생계획안 가결 시한이 2개월 연장되자 소속 노조원 1400여명의 월급 수령을 포기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반노조는 MBK가 2015년 홈플러스를 인수한 후인 2019년에도 노조 소속 무기계약직 3000여명 전원의 정규직 전환을 끌어내기도 했다.
갈등의 도화선은 지난해 12월 급여 체불이 기점이 됐다. 경영난이 현실화되자 일반노조는 공동성명을 발표하며 회생안 인가에 힘을 싣는 등 사실상 사측과 협력하는 노선을 택했다. 반면 마트노조는 대주주의 구조적 책임론을 포기할 수 없다며 정부를 향해 의견조회서 제출을 촉구하는 한편 유암코를 관리인으로 선임할 것을 요구하는 등 독자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생존권 위기라는 절박한 상황에서 대주주 책임론이라는 명분과 당장의 급여라는 실리가 충돌하고 있다”며 “노조 간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회생 절차를 둘러싼 혼란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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