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가장 큰 걱정은 AI 혁명의 다음 단계가 한국 메모리 업체들에 기대만큼의 기회를 가져다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AI가 학습 중심에서 추론으로, 다시 에이전트 AI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메모리 반도체가 가장 큰 수혜 산업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플랫폼인 ‘베라 루빈’(Vera Rubin)이 있다. 엔비디아는 올해 하반기부터 출하를 시작하고 내년부터 본격 양산에 들어가겠다는 계획을 유지하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새로운 플랫폼이 기대만큼 빠르게 안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확실성을 제기하고 있다. AI 산업이 워낙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이러한 우려 자체는 이해할 만하다.
투자자들이 걱정하는 두 번째 변수는 하이퍼스케일러(빅테크)들의 투자 여력이다.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구글, 아마존 등은 AI 인프라 구축을 위해 사상 최대 규모의 설비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회사채 발행과 증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주주환원 정책이 약화하는 것은 물론 막대한 투자에 걸맞은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두 번째는 중국 변수다. 추론형 AI가 확산하면서 토큰 사용 비용이 중요해지고 있고 이에 따라 가성비를 앞세운 중국의 대규모 언어모델(LLM)이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6월 공개한 지푸(Zhipu)의 GLM-5.2는 시장에서 예상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 애플이 메모리 가격 상승을 이유로 중국산 메모리 채택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고 중국 최대 D램 업체인 창신메모리(CXMT)가 상장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도 장기적인 경쟁 구도 변화에 대한 우려를 키웠다.
마지막 변수는 금리다.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국제 유가가 상승했고 이는 다시 인플레이션 우려와 미국 국채 금리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수년 동안 미국 국채 수익률의 상승은 글로벌 증시 전반의 조정으로 귀결됐다. 또한 반도체 칩을 사기 위해 회사채 발행을 늘리고 있는 하이퍼스케일러들에도 금리 상승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가운데 실제로 확인된 악재는 금리 상승 정도뿐이다. 나머지는 대부분 가능성에 대한 우려일 뿐 아직 현실로 나타난 것은 아니다. 단기 급등 이후 차익 실현의 명분으로는 충분했지만 이미 주가가 고점 대비 30% 이상 하락한 지금 시점에서 이러한 불확실성만을 이유로 추가적인 비관론에 무게를 둘 필요는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의 투자 축소 가능성은 아직 근거가 부족하다. 이달 하순 예정된 마이크로소프트와 메타 등의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자본적 지출(CAPEX) 계획을 확인할 필요가 있지만 현재까지 나타난 흐름은 오히려 반대다. 6월 실적을 발표한 오라클은 시장 예상보다 훨씬 공격적인 데이터센터 투자 계획을 공개했다. 지금까지 AI 인프라 경쟁을 주도해 온 기업들이 갑자기 투자 속도를 늦출 것이라고 판단할 만한 근거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중국 변수 역시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 중국 대규모언어모델(LLM)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이 지속하는 상황에서 전략 산업인 AI와 메모리 반도체의 핵심 공급망에 중국 기업들이 단기간에 본격 편입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CXMT의 상장 역시 중국 내 자급률을 높이는 데는 의미가 있지만 글로벌 메모리 시장의 판도를 단기간에 바꿀 정도의 변수로 해석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오히려 지금의 상황은 2025년 1분기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에도 AI 산업이 학습 중심에서 추론 중심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엔비디아의 주력 제품이 H200에서 블랙웰로 성공적으로 넘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컸다. 여기에 중국의 저가형 LLM인 딥시크(DeepSeek)의 등장,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의 관세 정책과 인플레이션 우려가 겹치면서 미국 국채 금리가 급등했다. 당시 AI 투자의 중심은 미국이었기 때문에 나스닥은 24%, 엔비디아는 43%나 하락했고 한국 코스피도 14%의 조정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의 전개는 시장의 우려와 달랐다. 블랙웰은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했고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도 시장이 우려했던 수준으로 전개되지는 않았다. 미국 금리는 다시 안정세를 찾았고 AI 산업의 중심이 추론으로 이동하면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빠르게 확대됐다. 그 결과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글로벌 증시 상승을 선도했다.
새로운 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주가는 언제나 기대와 실망을 반복한다. 기술 혁신의 속도가 빠를수록 주가의 변동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최근 국내 시장에서는 단일 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의 확산이라는 새로운 수급 요인까지 더해지면서 상승과 하락이 모두 과거보다 증폭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요한 것은 단기적인 주가 등락보다 산업의 방향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실만 놓고 보면 AI 인프라 투자는 계속 확대되고 있고 메모리 반도체의 중요성도 오히려 커지고 있다. 7월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실적 발표가 이어지면서 투자 계획이 다시 확인된다면 최근 시장을 지배했던 우려도 상당 부분 완화될 가능성이 높다. 큰 흐름에서 AI 산업의 성장 스토리와 한국 메모리 반도체의 경쟁력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한국 증시의 상승 추세가 훼손됐다고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