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장기금리 왜 안 떨어지나…AI 회사채와 ‘자금 쟁탈전’

주식

이데일리,

2026년 8월 18일, 오전 03:19

[뉴욕=이데일리 성주원 특파원] 미국 장기금리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배경에 인공지능(AI) 투자 경쟁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빅테크 기업들이 AI 인프라 투자를 위해 장기 회사채를 대거 발행하면서 투자자 자금을 놓고 미 정부와 경쟁하고 있어서다. 재정적자와 인플레이션이 장기금리 상승의 주된 원인인 가운데 AI 투자까지 금리 하락을 제약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AFP)
(사진=AFP)
블룸버그통신은 17일(현지시간) AI 투자를 위한 기업들의 차입 급증이 채권시장의 소화 능력을 압박하면서 미 국채 장기금리 상승에 갈수록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빅테크 차입, 美국채 순발행 25% 규모

통상 ‘구축효과(crowding out)’는 정부가 국채를 대규모로 발행해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면서 기업의 자금 조달을 어렵게 하는 현상을 뜻한다. 최근에는 반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AI 투자를 확대하는 빅테크가 회사채를 쏟아내면서 미 정부와 같은 투자자 자금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올해 미국 투자등급 기업의 회사채 발행액은 약 1조5000억달러(약 2128조원)로 전년 동기 대비 36% 급증했다. 노무라증권에 따르면 이 가운데 주요 빅테크의 차입액만 약 2000억달러다. 민간 투자자가 소화해야 하는 미 재무부의 중장기 국채 순발행액의 약 25%에 해당한다. 이 비율은 지난해의 5배 수준이다.

토니 로드리게스 누빈자산운용 채권전략 책임자는 “정부든 하이퍼스케일러든 모든 채권 발행자가 더 많은 차입자와 경쟁하고 있다”며 “따라서 금리는 더 높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국채 팔아 AI 회사채로…투자자 자금 이동

AI 회사채가 미 국채보다 높은 금리를 제공하면서 실제 투자자들의 자금 이동도 나타나고 있다. 알파벳이 최근 발행한 30년 만기 회사채 금리는 약 6.4%로 같은 만기의 미 국채보다 1.15%포인트 높았다. 지난달 메타와 연계된 데이터센터에 자금을 대는 채권 금리는 7.5%를 웃돌았다.

일부 투자자는 미 국채를 팔고 이들 회사채를 사고 있다. 모닝스타에 따르면 미국 투자등급 채권형 펀드의 평균 회사채 비중은 올해 30%까지 올라 최근 3년 사이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미 재무부의 장기금리 안정 노력과도 충돌한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장기금리 상승 압력을 줄이기 위해 재정적자의 상당 부분을 단기 국채로 조달하고 있다. 바클레이스는 이에 따라 올해 미 중장기 국채 순공급이 약 1조2000억달러로 지난해보다 4400억달러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회사채 순공급은 4740억달러 늘어날 전망이다. 상당 부분이 빅테크의 채권 발행 때문이다. 특히 AI 관련 회사채도 장기물에 집중돼 있어 재무부가 장기 국채 공급을 줄여 얻는 효과를 상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BofA “10년물 금리 0.3%p 상승 효과”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AI 기업의 차입이 “장기 미 국채 수요를 잠재적으로 구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회사채 발행 급증과 주택저당증권(MBS) 공급 증가가 올해 미 국채 10년물 금리를 약 0.3%포인트 끌어올린 것으로 추정했다.

이 같은 압력이 쉽게 사라지기도 어려워 보인다. JP모건체이스는 2030년까지 AI 인프라 투자 규모가 총 5조5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상당 부분을 차입으로 충당할 경우 장기 회사채 공급이 수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미 자산운용사 PGIM의 그레그 피터스 공동 최고투자책임자(CIO)는 AI 투자를 위한 차입이 정책 당국의 대응과 관계없이 장기금리를 높은 수준에 머물게 하는 요인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우리가 이제 시작 단계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하이퍼스케일러의 채권 발행 이야기는 정말 이제 막 시작됐다”고 말했다.

AI 투자와 미 정부의 재정적자가 동시에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하는 만큼 채권시장에서 벌어지는 ‘자금 쟁탈전’이 상당 기간 장기금리 하락을 제약할 수 있다는 게 월가의 진단이다.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미 재무부 청사 (사진=로이터)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미 재무부 청사 (사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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