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소버린 주주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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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2026년 8월 20일, 오전 05:06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소버린 주주총회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최근 소버린 AI 논쟁이 있었다. 미래 인공지능 시대에 자국 중심의 독자적 AI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자는 주장에서 촉발된 논쟁이었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소버린 AI에 찬성한다. 고전적 효율성의 잣대로 보면 외산 기술의 도입, 접목, 협력이 바람직할 수 있지만 자국 중심주의 도래, 회복탄력성, 데이터 안보 등까지 고려하면 독자 노선의 방향성이 맞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소버린티(sovereignty·주권) 문제가 비단 AI에만 국한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이제 우리 경제 규모와 글로벌 위상을 고려할 때 과거의 관성적 해외 의존이나 선진국(특히 미국) 방식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데서 탈피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경제가 이른바 전통적 ‘추격형’에서 명실상부한 ‘선도형’으로 도약할 수 있다.

이 연장선상에서 우리 주주총회 문제도 생각해봐야 한다. AI의 소버린티가 데이터와 컴퓨팅의 자립이라면 자본시장의 소버린티는 주총 의결권 판단과 자문의 자립이다. 상장사 최상위 거버넌스인 주총에 ‘누가, 어떻게,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느냐’는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 영향력이 ISS나 글래스 루이스 등 글로벌 소수 의결권 자문사에 과도하게 좌우된다면 우리 주력기업 등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소버린티가 유지될 수 있을지 당연히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국내 주식시장의 외국인 지분 비중은 30% 수준이고 그 중 4대 금융지주는 평균 64%에 달한다. 또 8월 현재 삼성전자는 약 47%, SK하이닉스는 약 51% 수준이다.

물론 해외투자자들의 국내 주식투자에 제한을 가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그들이 의결권을 행사할 때 우리 시장의 맥락과 정확한 정보가 충분히 반영되도록 하자는 얘기다. 실제로 그동안 합병, 배당, 이사 선임 등 주요 안건에서 국내 상법 체계나 시장 관행과 동떨어진 권고가 반복돼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따라서 이를 바로잡으려면 토종 의결권 자문사를 육성해야 하고 이들이 한국기업에 투자하는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적확한 의결권 자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할 때 ISS, 글래스 루이스 일변도에서 발생해온 편향, 국내 맥락의 과소 반영, 부정확한 정보와 데이터로 인한 오판 가능성을 보정할 수 있다.

최근 정부는 10년 만에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안을 내놓았다. 영국과 일본도 2010년, 2014년 도입 이래 각각 세 차례씩 개정한 것을 보면 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있다. 정작 핵심적인 문제에 대한 개선은 커녕 오히려 문제를 더 키울 소지가 있어서다. 앞서 언급했던 스튜어드십 코드의 핵심 인프라인 국내 ‘의결권 자문업’의 육성방안이 담겨 있지 않은 것이다. 육성방안이라면 각종 지원금이나 정책 지원을 연상하겠지만 그 얘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 시장의 고질적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어 달라는 얘기다.

구체적으로는 한 기관이 ESG평가와 의결권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스튜어드십 코드의 실무 지원까지 맡는다면 이는 결코 평평한 운동장이 아니다. 더구나 그 기관이 다수의 회원기관으로부터 수십억원의 자금을 지원받으며 스튜어드십 시장에 플레이어로 참여한다면 이 산업에서 공정한 경쟁 원리가 작동할 수 없다. 심판이 선수로 뛰는 경기장에서 누가 전력을 다해 뛰겠는가. 규제자가 할 일은 이런 부분들을 보정해 산업의 평평한 운동장을 만드는 일이다. 그러면 그 위에서 시장 참여자들은 생존과 번영을 위해 혁신과 창발을 추구하며 경쟁력 있는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공정한 시장의 힘이다. 운동장이 평평해지면 시장 참여자들은 치열하게 혁신을 다투고 그 경쟁 속에서 글로벌 투자자들이 기꺼이 채택할 만한 경쟁력과 신뢰를 갖춘 토종 의결권 자문사가 나올 수 있다. 소버린 AI가 데이터와 컴퓨팅의 자립 위에 서듯 소버린 주총은 우리 기업과 시장을 가장 정확히 읽어내는 자문 인프라 위에서만 가능하다. 금융위원회가 대한민국 스튜어드십 코드의 발전, 기업 지배구조의 선진화, 이를 통한 자본시장의 장기적 도약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지금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것, 그것이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주주총회에 주권을 되돌려주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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