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은 투자자의 마음을 극단으로 몰고 가곤 한다. 강세장에서는 이번 상승의 기회를 놓치면 부를 쌓을 마지막 기회를 잃을 것 같은 조바심이 생긴다. 이른바 ‘벼락거지’에 대한 두려움이다. 반대로 주가가 급락하면 ‘무주식이 상팔자’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도 불과 몇 달 사이에 투자자의 마음은 이 두 극단을 오갔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결과론이다. 현 시점에서 과거의 주가 차트를 보면 장기 상승 추세가 선명해 보이지만 그 과정에 있었던 투자자에게 미래는 늘 불확실했다. 시장은 끊임없이 투자자를 시험에 들게 했다. 삼성전자 주가는 최근 고점에서 42% 넘게 떨어졌지만 2022~2024년 반도체 경기 하강기에도 45.2% 하락했다. 2000년 이후 삼성전자 주가가 고점 대비 30% 이상 하락한 경우는 이번까지 모두 열 차례나 있었다. 결과적으로 삼성전자는 장기 투자하기 좋은 주식이었지만 그 높은 장기수익률은 중간 중간 찾아온 큰 폭의 하락을 견뎌낸 투자자에게만 돌아갔다. 좋은 기업을 찾아내는 것 못지않게 그 기업의 주주로 오래 남아 있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주가가 반 토막 가까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자신이 처음 주식을 샀던 이유가 여전히 유효한지를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장기투자 자체가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2016년 6월 말과 2026년 6월 말의 주가를 비교해 봤다. 이 10년 동안 코스피는 1970포인트에서 8476포인트로 330.2% 상승했다. 그런데 같은 기간 주가가 오른 종목은 573개에 불과했고 하락한 종목은 1274개에 달했다. 이 가운데 148개 종목은 부도 등의 이유로 상장폐지됐다. 장기투자도 장기투자 나름인 셈이다. 시간은 좋은 기업에는 우군이 될 수 있지만 경쟁력을 잃어가는 기업까지 좋은 투자 대상으로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주가가 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기다리는 것은 장기투자라기보다 손실의 확정을 미루는 행동일 수도 있다.
주식투자를 하다 보면 손해를 보는 국면은 피하기 어렵다. 장기적으로 주가는 기업의 내재가치에 수렴한다고 보지만 중단기적으로는 무작위에 가깝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치투자의 아버지 벤저민 그레이엄은 변덕스럽게 움직이는 시장을 ‘미스터 마켓(Mr. Market)’이라고 불렀다. 어떤 날에는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부르고 또 어떤 날에는 지나치게 낮은 가격을 제시한다. 중요한 것은 투자자가 매일 미스터 마켓의 제안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주식투자로 얻는 이익의 일면은 어쩌면 ‘굴욕을 견디는 대가’인지도 모른다. 기업의 가치에는 큰 변화가 없는데 시장의 외면으로 주가가 크게 떨어졌을 때 팔지 않고 견디는 것도 투자자가 가져야 할 태도다. 내가 가진 주식은 떨어지는데 다른 주식들이 오르는 상황 역시 견디기 어렵다. 시장에서 소외되는 시간은 투자자의 판단에 대한 확신을 끊임없이 흔든다. 이런 시간을 버티려면 단순한 낙관론이 아니라 자신이 보유한 기업의 내재가치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투자와 투기의 차이도 여기에 있다. 자신이 투자하려는 기업의 적정가치에 대해 나름의 판단을 가지고 있고 그 가치보다 주가가 낮다고 판단해 주식을 사는 것은 투자다. 반면 적정가치에 대한 판단 없이 내가 산 가격보다 누군가가 더 높은 가격에 사줄 것이라는 기대만으로 매수하는 것은 투기에 가깝다.
공자님 말씀처럼 들릴 수 있지만 실제 투자에서는 이 차이가 매우 중요하다. 적정가치에 대한 판단이 없으면 운 좋게 좋은 주식을 샀더라도 오래 보유하기 어렵다. 30%쯤 오르면 주식을 팔고 주변에 자랑한다. “10년치 은행 이자를 한 번에 벌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렇게 판 주식이 이후 두 배, 세 배 오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적정가치에 대한 판단이 없다면 좋은 기업을 골랐더라도 주가가 조금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너무 일찍 팔아버리기 쉽다.
반대의 경우는 더 곤란하다. 매수한 뒤 주가가 떨어지면 손실을 확정하기 싫어 팔지 못한다. 인간은 이익보다 손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결국 원해서 한 장기투자가 아니라 ‘비자발적 장기투자’가 된다. 앞서 살펴봤듯이 오래 보유한다고 모든 주식이 투자자에게 보답하는 것은 아니다.
적정가치에 대한 판단이 없으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장기간 상승하는 좋은 종목은 짧게 보유하고 장기간 하락하는 나쁜 종목은 오래 보유하게 된다. 이래서는 주식투자로 돈을 벌기 어렵다. 장기투자의 핵심은 오래 보유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래 보유할 만한 기업을 알아보는 데 있다. 그리고 기업의 가치가 훼손됐다면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생각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견디는 것과 무작정 버티는 것은 다르다.
시장이 다소 안정을 찾고 있지만 여전히 어렵다. 그렇다고 매일 주가를 들여다본다고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랜덤워크에 가까운 주가를 바라보는 시간은 줄이고 내가 투자하고 있거나 투자를 고려하고 있는 기업을 공부하는 시간을 늘릴 필요가 있다. 실적과 재무구조, 산업의 경쟁 구도와 기업의 경쟁력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이 주가를 바라보는 것보다 중요하다.
속된 표현으로 ‘물려 있다’고 하더라도 무엇에 물려 있는지가 중요하다. 가격이 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좋은 투자가 나쁜 투자가 되는 것은 아니며 오래 들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쁜 투자가 좋은 투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시장이 흔들릴 때 견딜 수 있는 힘은 막연한 믿음이 아니라 자신이 투자한 기업에 대한 이해에서 나온다. 견디는 것도 투자다. 그러나 무엇을, 왜 견디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먼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