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선로 한계의 문제, 플랫폼 기술로 돌파해야"

주식

이데일리,

2026년 9월 05일, 오후 05:09

[함일한 에이치에너지 대표] 초당 수억 개의 연산을 처리하는 AI 데이터센터가 국토 곳곳에 들어선다. 24시간 365일 기가와트(GW)급 전류가 쉬지 않고 공급돼야 한다. 당연하게도 선로 확대가 유일한 해법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좁은 국토, 천문학적 비용, 주민 수용성 문제가 앞을 가로막고 있다. 전력 인프라 확장은 한계에 직면했다. 이제는 있는 자원을 어떻게 제어하고 활용할지 고민해야 한다.

거슬러가면 우리는 이미 비슷한 문제를 경험했다. 1990년대는 인터넷 보급 초기 시절이었다. 국내 사용자끼리 주고받는 데이터조차 태평양 건너 미국 교환국을 거쳐 돌아왔다. 통신사 간 상호망 연동 체계가 부재했던 탓이다. 높아진 국제 회선 비용은 고스란히 이용자 부담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1999년 6월, 광케이블 선로를 단 1미터도 보유하지 않은 한 기업이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 기업은 새로운 케이블을 구축하지 않았다. 대신 각 통신사의 폐쇄적 네트워크를 하나로 묶는 중립적 연동 방식을 택했다. 망 사용 수요 기업과 여유 선로를 가진 공급 기업을 실시간으로 연결한 것이다. 케이블 용량이 항상 100% 포화 상태가 아니라는 점에 착안해 유휴 자원을 완벽히 활용했다. 케이블 연동 부재로 발생하던 비효율을 ‘맞교환(Exchange)’으로 해결한 사례다.

인터넷망 사례가 보여준 맞교환 시스템은 특정 산업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도로교통이 좋은 예시다. 차량이 천만 대라고 해서 차선을 천만 개 만들 필요는 없다. 모든 차량이 동시에 도로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내비게이션이 실시간 교통 상황을 분석해 흐름을 분산시키며 병목을 제거한다. 실시간 트래픽 기술로 이미 존재하는 도로망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전력 시장도 문제의 본질은 같다. 재생에너지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계통 안정성이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이다. 햇빛이 강한 주간에는 발전량이 피크를 찍지만 야간에는 제로가 된다. 일시적인 피크 전력을 감당하기 위해 매번 선로를 새로 구축할 수는 없다. 전국 모든 송전망이 동시에 포화 상태에 빠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해법은 가상 플랫폼에서 전력의 수요와 공급을 연결하는 것이다. 실물 전선을 깔지 않고도 망 활용도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이러한 원리를 전력 시장에 적용한 체계가 바로 ‘로지컬 익스체인지(Logical Exchange)’다. 실물 전선을 늘리는 대신 플랫폼에서 전력 수요와 공급을 연결하고 정산하는 구조다. 남아 있는 전력망의 여유 용량을 재배치해 기존 인프라의 효율을 높이는 방식이다.

이러한 모델은 이미 해외에서 검증을 마치고 운영 중이다. 호주가 세계 최초로 도입해 상용화한 ‘동적운영한계(DOE)’ 기술이 대표적이다. 호주는 플랫폼을 통해 전력망의 잔여 용량을 실시간으로 계산한다. 데이터 기반으로 확보한 여유 용량을 발전사업자들에게 유동적으로 할당한다. 덕분에 사업자들은 선로 과부하로 전력을 무조건 버려야 했던 제약에서 벗어났다. 선로의 여유 공간을 실시간 탐지해 전력 낭비를 막고 안정적인 수익까지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전력 산업은 발전소와 송전선로를 더 짓는 토목공학의 관점만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남아 있는 망 자원을 얼마나 가치 있게 활용하느냐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과거 인터넷망의 병목을 해결한 것이 더 많은 케이블이 아니라 연결과 제어의 혁신이었던 것처럼, 전력망의 한계 역시 소프트웨어 기술로 극복할 수 있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선로가 아니라 ‘정교한 제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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