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 깨고 선출된 미국인 교황…문화전쟁 완화 기대감도

해외

이데일리,

2025년 5월 09일, 오전 10:18

[이데일리 김겨레 기자]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인 교황 레오 14세가 선출되자 미국에선 “오랫동안 상상도 못한 일”이라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가톨릭 교회가 문화전쟁을 넘어 통합과 포용의 길로 나아가길 바란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레오 14세 신임 교황(사진=AFP)
월스트리트저널은 8일(현지시간) “가톨릭 교회가 14억 신자들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탄압에 비판적인 선교사 출신의 성직자에게 맡겼다”며 레오 14세 선출 소식을 전했다.

그동안 가톨릭 교회는 미국인 출신 교황을 선출한 적 없다. 가장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교황에 초강대국 출신을 앉힐 수 없다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는 교황이 특정 국가의 영향 아래 놓일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WSJ은 금기를 깬 레오 14세 선출에 대해 “세계적 권력에 맞서는 교회의 추기경이 미국 출신의 추기경을 선출할 수 없다는 오랜 가정을 뒤집었다”며 “오랫동안 상상도 못한 일”고 썼다.

미국은 가톨릭 인구 비중이 비교적 낮은 편이지만, 그 영향력은 크다. 미국 성인 가운데 가톨릭 신자는 20%로, 40% 안팎인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 그 비중이 낮다. 하지만 미국 가톨릭계는 보수와 진보가 극명히 갈리며 문화 전쟁의 축소판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낙태, 성소수자, 이민, 인종 문제 등 주요 사회 이슈를 둘러싼 미국 내 가톨릭계의 내부 갈등은 그동안 바티칸의 공식 입장과 자주 충돌해왔다.

중도 성향의 레오 14세가 이런 미국의 실정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서구 교회 전반에 걸친 분열을 봉합해줄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동성 커플에 대한 축복을 허용하는 등 진보적이었던 프란치스코 전 교황의 개혁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더 부드럽고 조화로운 방식으로 교회를 이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미국의 종교 싱크탱크인 액튼 연구소 명예회장 로버트 시리코 신부는 “레오 14세는 진보주의자들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고, 보수주의자들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현재 분열의 양측 모두 칭찬하고 공감할 만한 부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것이 근본적인 논쟁을 해결하지는 못할지라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WSJ에 전했다.

WSJ은 “미국인 교황 선출은 가톨릭 교회 지도부가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 재위 기간 동안 이어져 온 전반적인 방향을 유지하길 원한다는 의미”라며 “동시에 수년간 교회를 분열시켜 온 문화 전쟁을 완화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