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오 14세 신임 교황(사진=AFP)
그동안 가톨릭 교회는 미국인 출신 교황을 선출한 적 없다. 가장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교황에 초강대국 출신을 앉힐 수 없다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는 교황이 특정 국가의 영향 아래 놓일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WSJ은 금기를 깬 레오 14세 선출에 대해 “세계적 권력에 맞서는 교회의 추기경이 미국 출신의 추기경을 선출할 수 없다는 오랜 가정을 뒤집었다”며 “오랫동안 상상도 못한 일”고 썼다.
미국은 가톨릭 인구 비중이 비교적 낮은 편이지만, 그 영향력은 크다. 미국 성인 가운데 가톨릭 신자는 20%로, 40% 안팎인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 그 비중이 낮다. 하지만 미국 가톨릭계는 보수와 진보가 극명히 갈리며 문화 전쟁의 축소판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낙태, 성소수자, 이민, 인종 문제 등 주요 사회 이슈를 둘러싼 미국 내 가톨릭계의 내부 갈등은 그동안 바티칸의 공식 입장과 자주 충돌해왔다.
중도 성향의 레오 14세가 이런 미국의 실정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서구 교회 전반에 걸친 분열을 봉합해줄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동성 커플에 대한 축복을 허용하는 등 진보적이었던 프란치스코 전 교황의 개혁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더 부드럽고 조화로운 방식으로 교회를 이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미국의 종교 싱크탱크인 액튼 연구소 명예회장 로버트 시리코 신부는 “레오 14세는 진보주의자들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고, 보수주의자들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현재 분열의 양측 모두 칭찬하고 공감할 만한 부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것이 근본적인 논쟁을 해결하지는 못할지라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WSJ에 전했다.
WSJ은 “미국인 교황 선출은 가톨릭 교회 지도부가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 재위 기간 동안 이어져 온 전반적인 방향을 유지하길 원한다는 의미”라며 “동시에 수년간 교회를 분열시켜 온 문화 전쟁을 완화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