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압박 속 中과 친분과시하는 러…트럼프 '逆닉슨 전략' 역효과

해외

이데일리,

2025년 5월 09일, 오전 10:47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AFP)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미국이 연일 러시아에 우크라이나와의 휴전을 압박하는 가운데 중국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푸틴, 시진핑 향해 “친애하는 친구”

CNN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이 8일(현지시간) 러시아 크렘린궁에서 만나 4시간에 걸친 정상회담을 했다. 이날 만남은 수도 모스크바에서 독일에 대한 전승기념일을 축하하는 행사를 앞두고 이뤄졌다.

회담 후 발언에서 두 정상은 자신들의 관계를 세계질서를 지키고 개선하기 위한 핵심적인 힘이라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을 “친애하는 친구”라고 부르며 우호를 한껏 과시했다. 그는 “오늘날 도전적인 지정학적 상황과 세계적 불확실성 속에서, 러시아-중국 간 외교 협력은 국제무대에서 핵심적인 안정 요인”이라며 “우리는 함께 보다 공정하고 민주적인 다극적 세계 질서의 형성을 수호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도 두 나라를 “국제사회에서 안정적이고, 긍정적이며, 진보적인 세력”이라고 칭하며 “일방주의와 강대국의 패권적 행태라는 국제적 역류 속에서, 러시아와 중국은 특별한 책임을 지닌다”고 밝혔다.

양국은 ‘새 시대를 위한 중러 포괄적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더욱 심화하는 공동 성명’을 비롯해, 글로벌 안정, 국제법 권위 수호, 바이오 안보, 투자 보호, 디지털 경제, 검역검사, 영화 협력 등을 포함한 20개 이상의 협정문서에 서명했다.

이날 공동성명에서 푸틴 대통령은 양국이 야심 찬 목표를 설정했다며 경제 및 기술 협력 심화와 함께 2030년까지 러시아-중국 간 무역 및 투자에서 실질적인 질적 도약을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양국은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의 무역을 기록했으며,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제재를 받은 러시아 경제에 생명선 역할을 했다. 서방은 중국이 이중용도 물품을 통해 러시아의 군사작전을 지원하고 있다고 비판하지만 중국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중국 역시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145%라는 고율 관세를 매긴 상황에서 러시아 시장이 더욱 중요해졌다.

푸틴 대통령은 오는 9월 3일 중국의 항일전승기념일을 맞아 방중하기로 했다.

가디언은 “워싱턴 일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역(逆)닉슨 전략’(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수립해 냉전구도에 균열을 냈던 전략)을 활용해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해 중국과의 연대를 약화시키려는 희망이 있었지만 실제적으로는 중국과 러시아가 더욱 밀착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회담은 지난달 푸틴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선언한 우크라이나 간의 3일간 휴전이 발효된 직후 열렸다. 우크라이나는 이에 대해 “정치적 연극”이라며 실질적인 30일 휴전을 요구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전승절 행사에 참여하는 외국 귀빈들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며 공격을 예고했고 실제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으로 교통에 차질을 빚었고 모스크바 공항 대부분이 폐쇄됐다. 알렉산드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이 탄 비행기는 경로 변경해야만 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행사 현장인 ‘붉은 광장’ 등 모스크바 중심부에서는 인터넷 속도가 저하되거나 끊어졌다며,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에 따른 대책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러시아 역시 공격을 지속했다고 우크라이나 측은 주장했다. 안드리 시비하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엑스(X, 옛 트위터)에 “자정부터 정오까지 러시아는 734건의 휴전 협정 위반과 63건의 공격 작전을 수행했으며 그 중 23건은 현재 진행 중이다”라고 밝혔다.

◇트럼프 “30일간 무조건적 휴전해라”

미국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미국은 이상적으로 30일간 무조건적인 휴전을 요구한다”며 “만약 휴전이 존중되지 않을 경우,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추가적인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나는 유럽국가들과 함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평화를 확보하는 데 헌신할 것”이라며 “이번 휴전은 궁극적으로 평화협정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발언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으로 우크라이나측의 “무조건적인 휴전이 영구적 평화협정을 위한 직접 현상의 전제조건”이라는 요구를 반영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발언 직전 젤렌스키 대통령과 가졌다. 양측은 통화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직접 회담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도 전날 워싱턴 D.C.에서 열린 뮌헨 안보정책회의에서 “러시아는 현재 특정한 요구조건을 내걸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이 지나치다고 본다”고 밝히며 “미국이 이 협상을 전적으로 중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인정했다.

지지부진한 평화협상 속에서 중재 초기만 하더라도 러시아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던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다. 지난달 말에는 러시아와 거래하는 제 3국 역시 제재대상으로 하겠다는 2차 제재 가능성을 언급했고, 미국 연방의회 초당파 의원들은 러시아산 석유, 가스, 우라늄 등을 구입하는 국가에 관세를 부과하는 법안 준비에 착수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우크라이나 자문위원을 맡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미국 대사였던 커트 볼커는 이날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정말로 동맹을 맺은 것은 푸틴이 전쟁을 끝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광물 협정을 통해 우크라이나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취하면서도 푸틴 대통령을 설득해 전쟁을 종식해 군사적 지원비용을 줄이길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역닉슨 정책이 효과가 없다고 지적한다. 외교전문매체 포린어페어는 워싱턴이 아무리 많은 인센티브를 제시하더라도 푸틴 대통령은 “베이징과 워싱턴을 서로 이용할 뿐”이라고 경고했다. 호주 전략정책연구소(ASPI)는 이 전략에 대해 “망상”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