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러 방문, EU-中 관계 개선에 '찬물'"

해외

이데일리,

2025년 5월 09일, 오후 04:40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러시아 방문이 중국과 유럽연합(EU)의 관계 복원 시도에 그림자를 드리웠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에서 정상회담 후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AFP)

벨기에 브뤼셀 주재 중국 대사관은 지난 6일 EU 고위 관리 및 미국 외교관 등을 포함해 약 800명을 초대해 호화로운 중국식 뷔페를 제공했다. 성대한 리셉션과 함께 초대된 손님들은 와인과 맥주를 마시며 식사를 즐겼고, 각국 언어로 번역된 시진핑 사상 양장본도 선물로 받았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와 중국 베이징에서도 비슷한 행사가 이어졌다. 모두 중국과 EU 수교 50주년을 맞은 대규모 기념행사였다.

시 주석은 안토니우 코스타 유럽이사회 의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등과 ‘협력 확대’, ‘공동 번영’을 강조하는 축하 메시지도 교환했다. 양측 모두 이례적으로 러시아에 대한 비난을 배제했고, 양자 관계에 있어 근본적인 어려움도 간략하게만 언급했다.

이처럼 표면적으로나마 개선되는 듯 보였던 중국과 EU의 관계는 단 하나의 이벤트로 인해 재차 대폭 후퇴했다. 시 주석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초청으로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2차대전 승전 80주년 군사 퍼레이드에 참석하면서다. EU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최대 안보 위협으로 간주하며 적국으로 규정하고 있다.

시 주석은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중러 전략적 협력을 한층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양국은 ‘미국 중심 질서에 맞선 다극화 세계’를 공동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EU는 우크라이나 지원과 대러 제재를 강화하는 한편, 중국과의 무역·기술 협상도 병행하고 있다. 오는 7월 베이징에서 열릴 예정인 EU-중국 정상회의를 앞두고, 양측은 전기자동차 관세, 산업보조금, 시장 접근성 등을 두고 치열한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과의 관세 전쟁으로 코너에 몰린 중국은 최근 EU 의원 제재를 해제하고 프랑스 브랜디 수입을 재개하는 등 유화적 제스처를 보이고 있다. 미국이라는 거대 수출 시장을 잃었을 때를 대비해 유럽과 관계 개선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EU는 시 주석의 이번 러시아 방문을 계기로 중국의 유화적 제스처를 ‘외관상 조치’라고 확신하고 있다. 미국에 맞서기 위해 EU와 중국이 공조할 수도 있다는 일부 의견도 완전히 사라진 분위기다. 외신들은 EU를 향한 중국의 ‘매력공세’에 있어 결정적 한계를 드러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앞으로 EU는 중국과의 무역·기술 협상에서 더 과감한 요구를 하거나 기존의 실질적 무역 양보를 더욱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EU는 중국산 전기차에 최소가격제를 도입하는 방안과 중국의 배터리 투자·기술 이전 등과 같은 실질적 이익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발 고율 관세에 따른 무역전환, 즉 중국산 제품의 유럽 우회수출 가능성에 대해 EU와 공동 감시체계 구축을 원하고 있다.

EU 집행위 대변인은 “시 주석의 모스크바 군사 퍼레이드 참석은 양측 관계에 결코 건설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유럽 주요 언론과 전문가들도 “중국이 러시아와의 전략적 밀착을 유지하는 한 EU와 중국 간 근본적인 신뢰 회복은 어렵다”고 꼬집었다.

유럽 내에서는 미국과의 동맹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여전히 강해 중국과의 ‘균형외교’가 실질적 성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다만 EU 내부에선 27개 회원국의 이해관계가 엇갈린다. 중국의 투자 유치를 원하는 국가도 있어서다. 투자 유치 경쟁이 ‘하향 평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고 SCMP는 전했다.

한편 EU는 중국이 러시아에 이중용도(민·군 겸용) 부품을 제공하거나, 군수물자 지원을 확대할 경우 추가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이에 따라 EU는 조만간 러시아에 군수물자 공급을 지원한 혐의로 중국 기업 5곳을 제재 대상에 올릴 예정이라고 SCMP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