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중동과 AI칩 거래 '속도'…미국 내 대중 강경파와 갈등

해외

이데일리,

2025년 5월 16일, 오후 02:57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을 순방하며 대규모 인공지능(AI) 칩 수출·협력 계약을 잇달아 체결하자, 미국 행정부 내부에서 대중 강경파(매파)를 중심으로 경고 및 우려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이번 AI칩 수출 협상은 미국의 중동 내 영향력 확대와 중국 견제라는 전략적 목표가 맞물려 있으나, 기술 유출과 국가안보, AI 패권 경쟁 등 복합적 리스크가 동시에 부각되고 있다.

(사진=AFP)

15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UAE 아부다비에 도착해 현지 지도자들과 최종 협상을 진행하고, 2000억달러(약 280조원) 규모의 상업 거래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는 사우디에 엔비디아·AMD 등 미국산 AI용 반도체 수십만개를 공급키로 한 데 이어, UAE에도 2027년까지 연간 50만개씩 총 100만개 이상의 AI용 반도체를 공급할 전망이다.

이들 AI칩은 미국 기업이 소유하거나 주도하는 현지 데이터센터·AI 프로젝트에 투입될 예정이다. 사우디 국부펀드가 소유한 AI기업 ‘휴메인’은 엔비디아의 최신 칩 GB300을 1만 8000개 이상 도입해 초대형 AI 데이터센터를 건설할 계획이다. 챗GPT 개발사인 오픈AI도 UAE에 대형 데이터센터 구축을 검토 중이다.

사우디·UAE 등은 AI칩 수입 대가로 중국 장비·투자 비중을 줄이고 미국 기술의 독점적 사용을 약속했다. UAE는 향후 10년 동안 1조 4000억달러 규모의 미국 내 투자도 약속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내부에서 일부 고위 관료 및 대중 강경파들은 “미국산 AI칩이 중동을 경유해 중국으로 흘러들어갈 위험이 충분히 통제되지 않았다”고 경고하며, 협상 속도를 조절하고 법적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와 관련, 사우디·UAE와의 합의문에는 ‘중국 기업 접근 금지’ 문구가 포함됐지만, 구속력과 세부 내용이 미흡하다고 NYT는 부연했다.

대중 강경파들은 백악관의 AI 고문인 데이비드 색스가 걸프 국가 지도자들의 제안을 적극 수용한 것에 대해 “국가안보에 명백한 위험”이라며 “법적으로 구속력 있는 조항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AI칩 대량 수출을 발표해선 안 된다”고 강력 비난했다.

일부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도 “미국이 AI 패권을 유지하려면 첨단 칩을 대규모로 해외 반출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며 미국 내 생산·개발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JD 밴스 부통령도 “세계 최강 AI 시스템은 미국에서, 미국 칩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순방을 앞두고 조 바이든 전 행정부가 추진했던 ‘AI 확산 프레임워크’를 공식 폐지하고, 국가별 개별 협상 방식으로 전환했다. 이는 중동에서 중국산 AI칩 확산을 막고, 미국 기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적 조치다.

문제는 새로운 글로벌 반도체 수출 규칙이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잇따라 대규모 AI칩 수출 계약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 내 대중 강경파들은 향후 AI칩 수출에 대한 연방정부 라이선스 심사와 글로벌 반도체 수출 통제 규정 개정을 통해 추가 견제에 나설 방침이다.

NYT, 블룸버그 등은 “미국산 칩이 중동을 거쳐 중국에 우회 유출될 가능성, 미국 내 AI 기술 우위 약화, 국가안보 위협 등 복합적 리스크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