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에 거주하는 첸(33)은 팝마트 블라인드 박스(랜덤 박스) 구매에 2년 동안 10만위안(약 1940만원)을 썼다. 라부부 인형 등 희귀 아이템을 포함해 자신만의 컬렉션도 이제 수십개로 늘었다. 그는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수집 자체가 삶의 즐거움이 됐다”며 “이젠 상자 무게와 소리를 통해 원하는 피규어를 추측하는 능력을 갖췄다”고 밝혔다.
중국에서 Z세대(1995~2010년생)가 새로운 소비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과의 관세 전쟁으로 중국의 수출 주도 경제 성장 모델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한 줄기 희망’이 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진=AFP)
◇‘감정적 소비’ 열풍…Z세대가 中경제 흔든다
블룸버그통신은 15일(현지시간) 중국 경제가 전반적인 침체에 빠졌지만 젊은 Z세대는 아이돌 굿즈나 장난감부터 주얼리, 간식·음료 등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감정적 소비’(emotional consumption)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내 Z세대는 약 2억 8000만명으로 추정되며, 다른 세대와 비교해 주택 구매에 관심이 덜한 대신 취미 등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영국 컨설팅업체인 허브 오브 차이나에 따르면 중국 Z세대의 약 70%가 한 달에 최소 1회 이상 감정적 소비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감정적 소비란 단순히 유행을 좇는 소비를 넘어, 감정적 만족, 자기표현, 온라인 커뮤니티 소속감 등을 위해 자신만의 취미와 취향에 따라 소비하는 행태를 뜻한다. 물건을 구매하는 것뿐 아니라 체험이나 여행, 스포츠활동 등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개인의 정체성 확인 또는 사회적 연결을 표현하는 새로운 형태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중국 소셜미디어(SNS)에선 Z세대가 자신이 구매한 인형이나 굿즈, 버블티 등의 사진을 올린 뒤 친구·팔로워들과 감정적 만족을 나누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SNS 플랫폼엔 “인생이 힘들어도 좋아하는 굿즈 하나로 위로받는다” “팝마트 한정판 뽑으려고 밤새 줄을 섰다” 등과 같은 실명·사진 인증 사례가 넘쳐난다.
올해 중국 내 감정적 소비의 핵심 트렌드는 블라인드 박스다. 웨이보에는 관련 콘텐츠만 2억 7000만건, 관련 토론이 28만 9000건에 달한다. 중국 내 블라인드 박스 시장 규모는 지난해 약 300억위안으로 추정된다. 이 시장은 2019년 74억위안에서 2020년 93억위안, 2021년 150억위안, 2023년 210억위안 등 매년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중국 시장조사업체 ii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Z세대는 전체 블라인드 박스 소비자의 약 40%를 차지하며, 이 중 8.6%는 1000위안 이상 고가 제품도 구매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차이나 데일리는 일부 열성 팬들은 매년 수십만위안을 블라인드 박스 구매에 쓰고 있으며, 한정판 장난감을 얻기 위해 1만위안 이상을 쓰는 소비자도 많다고 전했다.
맥킨지는 지난 7일 내놓은 보고서에서 올해 중국 전체 소비시장의 연간 성장률을 2.3%로 전망했으며, 이 가운데 관광·외식·음료·스포츠용품 등 Z세대가 주도하는 분야는 두 자릿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시장조사업체 칸타 월드패널에 따르면 중국 Z세대의 뷰티 시장 점유율은 22.1%에 달하며, 1인당 뷰티 제품 지출액은 64세 이하 다른 연령대보다 44%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블룸버그는 “별도 분석이 나올 만큼 ‘감정적 소비’가 열풍을 일으키고 있으며, 이는 중국 경제 전반의 침체와는 대조적”이라며 “중국 정부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인 내수 소비와 국내 수요 진작에도 기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AFP)
◇관련 기업 주가 폭등…부모와 세대 갈등도
물론 Z세대의 소비만으로 중국 경제 전체를 반전시키긴 어렵다. 부동산 침체, 디플레이션, 미국 관세 영향 등 구조적 어려움은 여전하다.
또 Z세대의 취미 집착은 부모 세대와의 갈등도 낳고 있다. 선전의 20세 대학생 주오샤오도우는 F1 미니카 수집에 식비까지 아껴가며 수백 달러를 투자한다. 부모 세대는 “이해할 수 없는 낭비”라고 한숨을 내시지만, 그는 “감정적 만족과 자기표현이 더 중요하다”고 반박했다. 허베이성의 17세 치자샹도 만화 캐릭터 뱃지 수집이 취미라고 밝혔지만 그의 아버지는 “공감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Z세대 편이다. 그들의 독특한 소비 습관 덕분에 다양한 기업이 증시에서 수혜를 입고 있어서다. 장난감 업체인 팝마트와 블록스, 전통 디자인의 주얼리를 판매하는 라오푸골드, 음료 업체인 믹스웨와 구밍 등 Z세대의 감정적 소비와 관련된 기업들은 미중 관세 전쟁 속에서도 매출이 급증했다. 주가도 두 배 이상 급등했다. 마오거핑(화장품), 언티제니(음료) 등의 주가도 상장 직후 큰 폭으로 상승했다.
팝마트의 경우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마텔이나 해즈브로보다 기업가치가 낮았으나, 지금은 두 회사를 합친 것보다 더 커졌다. 라오푸골드 역시 상장 당시 업계 대기업인 저우타이푸크에 비해 작았지만, 현재는 더 높은 시가총액을 기록하고 있다. 기존 인기주였던 마오타이(주류), 하이얼(가전) 등의 주가가 올해 하락하거나 정체된 것과 대비된다.
심천 JM인베스트먼트의 리서우창 펀드매니저는 “새로운 소비자는 자기만족, 취미에 몰두하고 가격에 덜 민감하며, 감정적으로 연결되거나 감각적 즐거움을 주는 것에 돈을 쓴다. 본질적으로 기성세대가 쓸데없다고 여기는 것에 지갑을 연다”고 평했다. 팝마트의 열혈 팬인 양모씨(30)는 “장난감에 쓴 돈만큼 팝마트 주식을 샀다면 부자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