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서 거래 외교 올인한 트럼프..인권·가자 휴전은 뒷전

해외

이데일리,

2025년 5월 16일, 오후 05:24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기에 이어 2기 재집권 뒤에도 첫 국외 순방지로 중동을 택했지만, 순방 과정에서 ‘거래 외교’에 집중한 반면 역대 미국 정부가 중시했던 ‘인권’ 문제는 사실상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평가가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걸프 순방 마지막 일정으로 카스르 알 와탄에서 열린 비즈니스 포럼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15일(현지시간)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순방에서는 통상적으로 미국 대통령이 표현의 자유 등에 있어 문제적인 전력을 가진 권위주의 국가들을 방문할 때보다 인권 문제는 거의 거론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 투자 포럼에서 새로운 외교 기조를 강조했다. 그는 “이제 더는 미국 관리들이 이곳에 와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통치해야 하는지를 설교를 하던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집권 이후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밀월 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있으며, 트럼프의 아들들은 중동 지역에서 부동산 사업을 활발히 추진 중이다.

사우디 내 억압을 피해 해외로 탈출한 언론인, 인권운동가, 작가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메시지는 미국이 인권 옹호자로서의 전통적 역할을 공식적으로 포기하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현재 수감 중인 살만 알아우다 사우디 종교 지도자의 아들인 압둘라 알아우다는 “그 장면은 너무 고통스러웠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제 아버지를 고문하고 우리 가족의 출국을 금지한 사람(왕세자)과 직접 대화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과 관련해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과 사우디 간의 지속적인 파트너십과 중동의 평화를 기원하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걸프국 지도자들과 인권 문제를 논의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미국 국무부 역시 “비공개 논의였다”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이처럼 인권 단체들 중심으로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 국가의 언론 자유와 공정 재판 문제 등을 지적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서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았다고 AP통신은 짚었다. 이는 중동 내 인권 상황이 부분적 개선이 이뤄진 것도 있었지만, 동시에 미국 자체의 인권 신뢰도 하락이 배경에 있다는 분석이다.

사우디는 국제사회의 비판과 외교적 고립을 겪은 뒤 일부 정치범과 여성운전운동가들을 석방하는 등 부분적인 인권 개선 조처를 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와 법률 개혁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반체제 인사들이 수감 중이며, 수천 명이 출국 금지를 당하고 있다. 인권 단체들은 “사우디가 진정한 인권개선을 이룬 것이 아니라 이미지 개선과 외자 유치를 위한 전략”이라고 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민자와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대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면서 미국 내 사우디 망명자들은 공개 발언을 줄이고 있다.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설립한 비영리단체 ‘아랍세계 민주주의’의 사라 리아 휘트슨 대표는 “미국 내 체류 신분이 불안정한 사람들에게 여행이나 발언에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중동 순방에선 가자지구 휴전도 주요 의제에서 밀려난 모습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가자지구를 미국이 개입해 자유지대로 만드는 매우 좋은 구상이 있다”며 올해 초 자신이 내놓은 미국 주도의 가자지구 개발 구상을 반복했다. 이스라엘도 방문하지 않았다.

휘트슨 대표는 “지금 미국이 다른 나라의 인권 문제를 지적한다는 건 웃음을 자아낼 뿐”이라며 “지금의 미국은 도덕적·법적 권위 모두에서 설득력을 잃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