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감세 정책, 美 달러 '안전자산’ 지위 위협"

해외

이데일리,

2025년 6월 30일, 오전 10:56

[이데일리 임유경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과도한 감세 정책과 연방준비제도(연준·Fed)에 대한 정치적 압박이 미국 달러의 안전자산 지위를 위협하고 있다는 경제학자들의 경고가 나왔다.

29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산하 글로벌시장연구센터와 공동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0% 이상이 “향후 5~10년 내 미국 달러의 안전자산 지위가 약화될 수 있다”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조사는 미국 내 주요 대학 및 연구기관 소속 경제학자 47명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트럼프의 재정 운용 방식과 연준에 대한 지속적 압박이 달러 자산의 장기적 신뢰도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적으로 묻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응답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고 있는 세제 개편안을 주요 리스크로 꼽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집권 직후부터 법인세 인하와 소득세 감면을 포함한 일명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OBBB)을 추진 중이다. 해당 법안은 28일 연방 상원 절차 관련 표결에서 찬성 51표, 반대 49표로 가결돼 상원 통과 첫 관문을 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에 이 법안을 다음달 4일까지 통과시키라고 주문한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1일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연설하고 있다.(사진=로이터)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정책이 장기적으로 미국의 국가부채를 줄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비당파적인 의회예산처(CBO)는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미국의 연방 부채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 수준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연준에 대한 정치적 압박도 경제학자들의 우려를 키우는 요소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전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우려 속에서도 연준이 금리를 충분히 낮추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파월 의장의 임기는 2026년 5월까지지만, 트럼프가 조기에 후임을 임명할 것이라는 관측도 월가 안팎에서 제기된다.

로버트 바르베라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FT에 “현재의 재정 정책은 확실하게 과도하며, 이는 달러 자산에 대한 태도 변화 가능성을 열어둔다”며 “만약 여기에 백악관이 연준 장악 시도를 더한다면, 나의 우려 수준은 ‘다소 우려’에서 ‘매우 심각한 우려’로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통상 세계 금융시장에 위기가 닥치면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달러가 약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우려를 가중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2일 상호관세를 발표한 직후 글로벌 주식시장이 급락하면서 달러도 동시에 하락했다.

최근 S&P500 지수는 반등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달러 가치는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6개 주요 통화 바스켓 대비 상대인 가치를 측정한 ‘미국 달러 인덱스(DXY)’는 30일 기준 전일 대비 0.14p 하락한 97.27를 기록하면서 3년 내 최저치에 근접했다.

안나 치에슬락 듀크대학 교수는 “재정적자와 정부의 달러 약세 유도, 그리고 연준 후임자에 대한 불확실성, 연준 독립성 약화는 모두 달러의 안전자산 지위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경고했다.

이와 함께 응답자의 73%는 미국 10년물 국채 수익률이 내년 중반까지 5%를 넘을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국채 수익률은 일반적으로 시장 불안기에 하락하지만, 4월 초부터 상승세를 보이는 중으로 현재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약 4.3% 수준이다. 에비 파파 마드리드 카를로스 3세 대학 교수는 “미국 국채는 더 이상 안전자산이 아닐 수도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명명한 일명 ‘해방의 날’ 이후 미국 10년물 수익률과 유럽 수익률 간의 괴리를 보라”고 꼬집었다.

경제 전망도 하향 조정됐다. 미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1.6%에서 1.5%로 소폭 하락했으며, 핵심 개인소비지출(PCE) 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2.8%에서 3%로 상향 조정됐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소비자 가격에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로즈 바타라이 텍사스대학 오스틴캠퍼스 교수는 “현재 안전자산은 스위스 프랑과 금으로 보인다”며 “미국은 오히려 정책 불확실성이 위험 프리미엄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장기 금리를 올리고 통화 가치를 낮추는 신흥시장 국가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FT는 “달러의 안전자산 지위가 흔들리면 글로벌 자금의 이동 방향 자체가 바뀔 수 있다”며 “미국 경제정책의 신뢰 회복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