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눈치냐 독립성이냐…美연준 차기 의장의 '딜레마'

해외

이데일리,

2025년 7월 18일, 오후 05:27

[이데일리 양지윤 기자]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을 향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차기 연준 의장이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연준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을 만족하게 해야 하는 상반된 과제를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사진=AFP)
◇‘금리 인하’ 간절한 트럼프, 파월 흔들기

야후파이낸스는 17일(현지시간) ‘차기 연준 의장의 딜레마: 연준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족시켜야 하는 과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파월 의장의 후임자에게 가장 큰 과제는 연준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족시키는 것이 될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파월 의장의 법적 임기는 내년 5월까지로 10개월이나 남아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파월 흔들기는 집요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기준금리 인하 요구에 파월 의장이 응하지 않자 연일 조롱하고, 해임을 거론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보수 성향의 케이블·스트리밍 방송인 ‘리얼아메리카보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그가 자진 사임하면 너무 좋겠다. 사람들은 내가 그를 해임하면 시장이 혼란에 빠지겠다고 생각한다”며 한발 물러서는 듯한 발언을 했지만, 시장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백악관과 일부 공화당 인사들이 연준 본부의 보수 공사 비용 초과 문제를 제기하며 계속해서 파월 의장을 압박하고 있어서다.

백악관과 공화당 일각에선 연준 청사 개보수 과정에서 공사비가 애초 계획보다 7억달러 늘어난 25억달러에 달한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하며 파월 의장 흔들기에 나섰다. 여기에 가세한 트럼프 대통령도 “25억 달러, 27억 달러나 들어간 보수 비용에는 사기가 개입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파월은 이 과정에서 적절한 승인도 받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파월 의장이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 해임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 연방준비법상 연준 의장이 기준 금리 인하 같은 정책상 이유로 해임할 수 없게 되자 파월의 권한 남용 가능성을 거론하며 또 다시 압박에 나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나는 오직 저금리 인사만 원한다”면서 파월 의장을 즉각 해임할 뜻이 없다고 밝히면서도 “사기(fraud)로 물러나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해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해당 발언 역시 파월 의장의 해임 가능성을 열어 둔 정치적 수사라는 평가가 중론이다.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오른쪽)과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이 지난 4월 워싱턴 DC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한 후 취재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차기 후보, 일제히 금리 인하 지지…월가는 독립성 훼손 우려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 의장 흔들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차기 의장 후보군들이 일제히 금리 인하를 지지하고 나서 중앙은행의 독립성 유지 여부가 화두로 떠올랐다. 차기 연준 의장 후보에는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을 포함해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 현재 차기 연준 의장 후보로는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총재,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 등이 거론된다. 이중 최근 가장 유력한 후보로 떠오른 해싯 위원장은 트럼프 1기 행정부에 8년간 몸담으며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을 이해하고, 그에게 맞게 자신의 생각과 입장을 조율하는 법을 익혀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점이 유리하지만, 월가가 이를 중앙은행의 독립성 훼손으로 받아들일 여지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존 힐센라스 스톤엑스의 수석 고문은 야후 파이낸스에 “트럼프는 매우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을 앉히고 있다”며 “차기 연준 의장이 누가 되든 암묵적인 약속을 지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싯 위원장은 전날 NBC와의 인터뷰에서 “백악관의 모든 사람이 연준의 독립성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며 “중앙은행이 독립성을 잃으면 경제에도 나쁘고 시장에도 나쁘다”고 강조했다. 연준 의장의 독립성 훼손을 우려한 월가를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다만 그는 전 세계 다른 중앙은행의 완화 주기에 맞춰 금리를 지금보다 낮춰야 한다고 주장,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 인하 요구에 부응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또 다른 후보 워시 전 이사 역시 같은 날 CNBC와의 인터뷰에서 “역사는 통화정책 수행에서의 독립성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면서도 “그렇다고 연준이 모든 면에서 독립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금리 인하를 주저하는 연준의 태도가 사실상 그들에게 불리한 요소”라고 주장했다.

파월 의장 해임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의 입김이 점점 강해지자 공화당 내부에서도 연준 독립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화당 소속 톰 틸리스 상원의원은 “연준이 백악관 직속 기관처럼 운영된다면, 이는 엄청난 실수가 될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민주당 소속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도 “파월 해임은 시장을 폭락시킬 것”이라며 “연준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요구하는 것과 정치적 보복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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