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FP)
CNN방송 등에 따르면 행정명령엔 고용주(기업)들이 직원 퇴직연금에 사모주식(Private Equity), 부동산, 원자재, 가상자산 등 다양한 대체 투자를 포함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미 노동부에는 1974년 근로자 퇴직소득보장법에 따른 기존 ‘수탁자 의무’ 해석을 재검토할 것을,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는 진입장벽 완화 및 투명성 확대를 주문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퇴직연금 운용시 위험자산 투자에 따른 소송 위험을 덜어주려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에서 “고용주가 참가자(직원)에게 최고의 투자기회를 제공하도록 판단권을 보장한다”고 강조했다.
그간 사모펀드·사모채권 등 ‘비공개시장’은 기관과 초고액 투자자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 몇 달 동안 자산운용업계는 12조달러 규모 연금시장 진입을 확대해달라고 요구했고, 이에 미 정부가 공식 장애물 제거에 나선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미국 직장인 노후 자산 운용 방식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401(k)는 미 근로자가 세금 혜택을 받으며 급여 일부를 주식·채권 등에 투자할 수 있는 대표 퇴직연금 제도다. 현재는 대부분이 공모 주식과 채권 펀드에 투자된다.
현재도 법적으로는 사모펀드 등이 퇴직연금에 포함되는 걸 금지하진 않지만, 높은 수수료·복잡성·투자 안정성 문제 등으로 고용주와 펀드 운영자들은 실제 도입을 꺼려왔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행정명령이 당장 정책을 바꾸는 것은 아니지만, 노동부·SEC가 새 가이드라인이나 규정을 마련토록 명시하고 있다.
시장 및 관련 업계에선 고위험 투자상품 접근 허용에 따른 저변 확대 기대가 커지고 있다. 다만 행정명령 시행까진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관측된다. 주요 퇴직연금 운용사들이 고용주가 활용할 수 있는 적합한 펀드를 개발해야 하는 데다, 고용주 역시 새로운 규칙에 따라 새로운 투자 상품에 대한 실사 등을 스스로 실시해야 한다.
TD 코웬 워싱턴 리서치그룹의 금융 서비스 정책 분석가인 재럿 세이버그는 “실제 제도 변경까지는 2026년까지 걸릴 수 있다. (이에 따른) 업계 실무 또는 기업별 전략 변화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2022년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미 노동부에서 차관보를 지낸 리사 고메즈는 “퇴직연금 운영 기업들은 플랜 참여자와 수혜자의 최대 이익이 되는 결정을 내리기 위해 새롭게 도입되는 옵션을 철저히 검토하는 등 핵심 수탁자 의무를 그 어느 때보다 엄격히 준수해야 할 것”이라며 “상황이 더 복잡해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민간 변호사로 30년 동안 보험 계획 후원자를 대리하고 정부에서도 직원 연금정책 책임자로 일했던 그는 “후원사들은 사모펀드 운용 경험이 있는 변호사와 수탁자문을 고용해 새로운 옵션들을 검토하고, 새로운 사모펀드 상품을 마케팅하는 여러 회사로부터 수수료, 투자 전략 및 성과에 대한 자세한 프레젠테이션을 요청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퇴직연금 시장 진입을 노려온 관련 업계는 잇따라 환영 입장을 내놨다. 스티브 슈워츠먼 블랙스톤 최고경영자(CEO)는 “나는 2017년부터 이러한 퇴직 자산 접근은 업계의 꿈이라고 말해왔다”고 밝혔다. 스완 비트코인코리 클립스텐 CEO도 “비트코인이 401(k)에 포함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고 말했다.
미 펀드평가사 모닝스타는 투자 목적, 자산배분 관점에서 공모시장(상장사) 성장 한계가 명확해지면서, 다양한 비공개시장 투자가 포트폴리오 분산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짚었다. 실제로 상장전 기업, 사모펀드 영역이 지난 10년 간 폭발적으로 성장한 반면, 미 주식시장 상장 기업 수는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다.
하지만 노후 자금 조성을 위한 퇴직연금인 만큼 위험성에 대한 경고 목소리도 적지 않다. 평균 은퇴자(직장인 투자자)가 실제로 더 복잡하고 비싼 상품에 접근할 경우, 기존 공모상품보다 위험이 급격히 커질 수 있어서다.
피치북 등 금융분석기관은 “비용·복잡성·변동성·투자검증 역량 부족 문제를 고용주가 모두 떠안지는 않을 것”이라며 “실제 상품 출시까지 길고 신중한 논의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정치권에서도 우려가 제기된다. 민주당 대표적 금융정책 담당자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사모채권 시장의 성장과 은행, 연금계좌로의 연쇄 유입이 시스템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며 재무부·연방금융안정감독위원회(FSOC)에 ‘비은행 금융사의 사모시장 리스크 스트레스 테스트’ 도입 등 강력 대응을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