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공개된 사우디아라비아 네옴시티 내 2029아시안동계게임 개최 예정지인 트로제나의 설계 조감도. (사진=AFP)
파이낸셜타임스(FT)는 21일(현지시간)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사우디 정부가 2029아시안동계게임을 개최하기 위해 건설 중인 사막 속 스키 리조트 ‘트로예나’(Trojena) 완공이 지연되며 대회 개최가 불투명해졌다”며 “사우디 측은 공사가 기한 내 마무리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한국과 중국 등 대안 국가에 개최 협조를 타진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보도했다.
트로예나는 사우디가 무려 5000억달러(약 700조원)를 들여 추진하는 ‘네옴’(Neom) 메가 프로젝트의 핵심 시설 가운데 하나다. 요르단 국경 인근 해발 2600m 지역에 조성되는 이 리조트에는 30km 길이의 인공 스키 코스, 고급 호텔, 골프장, 인공호수, 각종 레저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사막 지역 특성상 천연 강설이 거의 없어 모든 눈을 인공으로 생산해야 하는 게 문제인데, 이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과 기술적 제약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140m 깊이의 인공호수 조성을 위해 아카바만에서 200km 떨어진 현장까지 해수를 끌어올려 담수를 생산해야 하지만, 핵심 해수 담수화 시설 공사는 아직 착수조차 하지 않은 상태다. 이달부터 호수를 채우기 시작하겠다는 기존 계획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현재는 트럭을 이용해 제한적으로 물을 공급하고 있으며, 공사 현장은 도로 경사와 협소한 교통망 때문에 자재 수송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리조트의 또 다른 핵심 공간인 ‘더 볼트’(The Vault) 공사도 난항을 겪고 있다. 이 시설은 산을 절개해 호텔과 상업·엔터테인먼트 시설을 넣는 구조로, 암반에 3000개 이상의 케이블을 설치해야 한다. 하루 한 개 설치하는 데 그치며 전체 구조 완성까지 최소 8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같은 차질은 사우디가 추진하는 ‘스포츠 허브 전략’의 신뢰성에도 직격탄이 될 수 있다. 사우디는 최근 수년간 대규모 스포츠 투자를 통해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고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지난해에는 2034년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개최권을 확보하며 스포츠 강국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이에 대해 인권단체들은 이를 ‘스포츠 세탁’(sportswashing)이라고 비판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아시안동계게임 개최에 차질이 생긴다면 논란을 더욱 키울 수 있다는 진단이다.
사우디 측은 “트로예나 프로젝트는 국제적 기준, 지속가능성, 장기적 효과를 중시하는 단계적 계획에 따라 진행 중”이라며 공개적으로는 차질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대외적으로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의 결정에 따라 대회 개최지가 변경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내부에 존재한다. OCA는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중국 외교부는 “사우디의 대회 개최를 지지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으며, 한국 문화체육관광부도 “사우디 측과 대회 이전 문제에 관한 협의를 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네옴 프로젝트는 최근 경영진 교체 이후 전반적인 구조 조정을 앞두고 있으며, 부족한 재원과 촉박한 일정 압박 속에 일부 사업 축소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프로젝트 관계자들은 “사우디는 트로예나를 반드시 완성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며 “다만 초기 구상만큼의 규모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FT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건설 지연을 넘어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주도하는 초대형 국가 프로젝트의 한계와 현실적 과제를 드러낸 사례로 평가된다”며 “최악의 경우 2029 아시안동계게임은 한국이나 중국으로 넘어가고, 사우디는 2033년 대회를 노려야 할 가능성도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