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 AFP)
◇멕시코, ‘전략산업 보호’ 명분…실상은 미국 압박 수용
멕시코 경제부는 지난 10일(현지시간) 멕시코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지 않은 국가로부터 수입되는 총 1463개 품목에 대해 관세를 인상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특히 소형 자동차의 경우 현행 15~20%에서 50%까지 세율이 치솟는다. 자동차 외에도 철강, 장난감, 오토바이에는 35% 관세가, 섬유 제품에는 10~50%의 관세가 부과된다.
이번 조치는 세계무역기구(WTO)가 허용하는 최대치 범위에서 이뤄진 것으로, 정부는 “전략산업 보호와 일자리 유지”를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이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과 회담한 후 일주일 만에 나왔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가 시점상 미국의 압박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많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교역 파트너들에게 대중국 견제를 요구해온 가운데, 멕시코가 이를 수용한 ‘정치적 관세’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관세 인상이 예상된 품목 중 공개된 품목은 1381개이며, 문건은 대상품목의 71.19%가 중국산 수입품이라고 밝혔다. 이어 한국이 8.19%로 두 번째, 인도는 3.75%, 태국 3.35% 순이다. 그 외 타이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브라질, 캄보디아, 튀르키예까지 합해 이들 10개국이 전체 대상의 97.33%를 차지한다.
◇블룸버그 “일본산 자동차에 비해 韓 불리한 위치”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조치로 한국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의 후퇴보다 더 위험한 것은 일본의 진출이라는 것이다. 일본은 멕시코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어 이번 관세 인상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한국은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영향을 받은 국가가 됐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멕시코는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을 통한 미국 시장 진출의 거점”이라며 “자동차, 자동차 부품, 철강, 디스플레이 등 한국의 수출품은 북미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더 큰 불리함에 놓일 수 있다”고 봤다.
경제복합성연구소(OEC)는 지난 7월 기준 한국의 멕시코 수출품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으로 1억 5100만달러(2104억원), 음향기록물 6150만달러(857억원), 도금강판 6010만달러(837억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한국은 현재 관세협상의 지연으로 대미 수출 관세서 일본보다 불리한 위치다. 대미투자와 관련해 양해각서(MOU) 수준의 합의에 이른 일본은 오는 16일부터 일본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아졌지만, 한국은 아직 이에 대한 이견이 남아있는 상태로 25% 관세가 유지되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2일 한미 관세협상 후속 협의를 위해 미국을 찾았으나 가시적 진전 없이 이날 귀국했다.
이런 상황서 한국 정부는 멕시코정부와 협상하겠다는 입장이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관세 인상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조치가 아니라며 “제안된 조처로 영향을 받는 국가의 (멕시코 주재) 대사관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관련 국가들과의 갈등을 원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다만 현대차·기아는 멕시코 현지 생산 기지 덕분에 일정 부분 방어력이 있다는 평가다. 기아는 누에보레온주 공장에서 연간 40만 대를 생산하며 K3, K4 등을 현지 생산해 수출한다. 현대차는 올해 초 멕시코에서 생산하던 투싼 SUV를 미국으로 이전해 생산하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현지 생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멕시코에서 생산하지 않는 차종이나 부품, 그 외 제품들은 여전히 고율 관세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멕시코에 진출한 국내 기업은 92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