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스페인 수교 75주년 기념 로고. 한복 문양에 스페인 국기 색상을 형상화했다.
두 나라의 첫 인연은 임진왜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페인 출신의 천주교 신부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는 일본에 선교사로 들어왔다가 왜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의 초청으로 1593년 12월 27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남문동 사도마을에 상륙했다. 네덜란드 출신의 얀 야너스 벨테브레이(박연)와 헨드릭 하멜보다 앞서 유럽인 최초로 조선 땅을 밟은 것이다.
세스페데스는 1년 6개월간 종군하며 사목 활동을 펼쳤으나 조선인에게 복음을 전하지는 못했다. 그는 조선에서 겪은 일 등을 적은 4통의 편지를 일본의 페드로 고메스 신부에게 보냈다. ‘선교사들의 역사’란 책에 수록된 이 글은 조선의 생활상을 처음으로 서양에 알린 기록이다.
진해시(진해구)는 방한 400주년인 1993년 세스페데스 고향 알카르데테드 주민들이 기증한 청동 기념비를 사도마을에 세운 데 이어 2015년 기념비 주변을 스페인풍으로 꾸며 세스페데스 공원이라고 명명했다.
스페인에 가장 먼저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한국인은 작곡가 안익태다. 일본과 미국 유학을 거쳐 독일·프랑스 등에서 활동하다가 2차대전이 치열해지자 1944년 6월 중립국이던 스페인으로 거처를 옮겼다. 1946년 스페인 여성 롤리타 탈라베라와 결혼한 뒤 스페인으로 귀화했고 1965년 9월 16일 바르셀로나에서 눈을 감았다. 내일은 안익태 60주기이고 올해는 애국가 작곡 90주년이다.
올해로 한국과 스페인은 수교 75주년을 맞았다. 양국에서 문학, 무용, 클래식, 관광, 요리, 뷰티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올해 초 서울 중구 명동 유네스코회관 7층에 스페인문화원(세르반테스문화원)이 정식 개관했다.

6m 크기의 그리팅맨을 스페인 라스팔마스로 운송하기 위해 컨테이너 트럭에 싣고 있다.(사진=유영호 작가)
라스팔마스는 1966년 3월 한국수산개발공사 소속 강화601호가 처음 닻을 내린 이래 우리나라 원양어업의 전진기지였다. 1970년대에는 한국어선 250여 척이 북적거렸고 상주 동포가 4000여 명에 달해 총영사관도 개설됐다. 이역만리에서 순직한 선원들의 납골당도 마련돼 있다.
대한민국 원양어업 역사는 1957년 8월 지남호(指南號)가 인도양에서 참치 등 10t의 어획량을 올린 것으로 시작됐다. 1958∼1979년 원양어업으로 벌어들인 외화는 20억 달러로 이 기간 우리나라 수출액의 5%를 차지했다. 1965∼1975년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모국으로 보낸 1억153만 달러보다 훨씬 많았다.
오는 28일 전남 완도 청해진스포츠센터에서는 권영호 인터불고 회장이 제10회 장보고 한상(韓商) 어워드 대상을 받는다. 원양어선 기관장 출신인 권 회장은 1971년 대림산업 라스팔마스 주재원으로 부임했다가 1980년 창업해 큰 성공을 거뒀다. 스페인 마요르카의 안익태 유택을 구입해 우리 정부에 기증하는가 하면 중국 지린성에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고향인 경북 울진에서 장학사업도 펼치고 있다.
해마다 우리 국민 50만여 명이 스페인을 찾는다. 산티아고 순례길이나 바르셀로나 가우디 성당에서 가장 자주 마주치는 아시아인은 한국인이다. 스페인의 빼어난 자연경관, 유서 깊고 다양한 문화유산, 싸고 맛있는 음식 등만 즐기고 올 것이 아니라 두 나라의 오랜 인연을 더듬어보면서 안익태의 모국 사랑과 원양어선 선원들의 땀과 눈물을 떠올리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