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FP)
백악관은 16일(현지시간) 독일 제약사 머크의 자회사인 EMD 세로노와 불임치료제 가격을 인하한다는 내용의 협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 서명한 ‘불임치료 접근 확대 행정명령’의 후속 조치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미국 가정에 더 많은 아기를”이라며 불임치료 비용을 정부 또는 보험사가 전액 부담하도록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합의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 중인 의약품 직접 구매 플랫폼 ‘트럼프RX’에서 내년부터 IVF 시술시 쓰이는 배란 유도 의약품 ‘고날-F’, ‘오비드렐’, ‘세트로타이드’ 등의 가격이 최대 84% 할인된 가격에 판매될 예정이다.
백악관은 이번 합의 과정에서 대형 약국 체인인 CVS와 시그나 계열사 익스프레스 스크립츠 두 곳도 의약품 유통 비용을 절감하기로 했다면서, 1회당 5000달러가 넘는 IVF 시술 비용을 약 2200달러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조치는 IVF 치료 비용과 여러 불임 관련 의약품 가격을 전례 없이 낮출 것”이라며 앞으로 IVF 시술을 받을 때마다 드는 의약품 비용이 73% 감소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 여성들과 가족들에게 있어 역사적인 승리”라고 덧붙였다.
EMD 세로노는 지난 7월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약값 인하 요구 서한을 받은 17개 제약사 중 한 곳이다. EMD 세로노는 이번 합의로 또다른 불임치료제인 ‘퍼고베리스’의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 절차를 더욱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일부 의약품에 대해선 관세도 면제받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고용주가 직원들에게 제공 중인 의료보험과 별도로 불임치료 급여를 제공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새로운 지침도 마련했다고 밝혔다. 치과·안과 보험처럼 기업들이 IVF 지원 제도를 자율적으로 제공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중소기업들의 불임치료 혜택 확대를 염두에 둔 조치로 파악된다.
이와 관련, 정부가 기업들의 불임치료 급여 지급을 의무화하거나, 기업에 보조금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라고 워싱턴포스트(WP)는 부연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최근 미국에선 많은 사람들이 임신을 늦추면서 IVF가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생식의학회(ASRM) 집계에선 2023년 미국에서 태어난 전체 신생아 중 2.6%가 IVF를 통해 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 플랜에서도 IVF 시술 비용을 일부 보장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2020년 뉴욕주는 100명 이상 가입자를 보유한 건강보험 플랜에선 체외수정 3회 시술 비용을 보장토록 의무화하기도 했다.
이날 백악관 정책 발표 직후 뉴욕 기반 불임 치료 헬스케어 기업인 프로지니(Progyny)의 주가는 5% 상승했다.

(사진=AFP)
한편 이번 조치가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기반인 낙태 반대 세력과의 잠재적인 정치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FT는 전망했다. 일부 보수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IVF 과정에서 사용되지 않은 수정란 폐기에 대한 비판과 함께 생명윤리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어서다.
지난해 앨라배마주 대법원은 “태아는 발달 단계, 신체적 위치 또는 기타 보조적 특성에 따라 예외 없이 ‘아이’”라고 판결했다. 수정란도 법적으로 아이라는 의미다. 이 판결 이후 앨라배마주에선 체외수정이 일시 중단됐다. 앨러배마주는 트럼프 대통령을 강력 지지하는 곳으로, 과거에도 대선 때마다 공화당 후보가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한 보수주의 활동가는 FT에 “나는 그것(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생명 존중과 직접적으로 모순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낙태 반대론자들과 IVF 사이의 갈등에 대한 질문에 “이보다 더 생명을 존중하는 정책은 없다”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