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H-1B 취업비자 문턱 높아져…유학생 ‘취업절벽’ 직면

해외

이데일리,

2025년 11월 07일, 오후 02:05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 위스콘신-매디슨 대학교에서 컴퓨터 및 데이터 과학 학위를 받은 인도 유학생 이샨 차우한은 올해 5월 졸업을 앞두고 구직 활동을 진행하며 큰 좌절을 경험했다. 대다수 기업들이 H-1B 비자 스폰서십(후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면접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차우한은 “최고의 대학을 나왔든, 최고의 평균평점(GPA)를 받았든, 최고의 인턴십을 했든, H-1B 비자 후원에 대한 질문을 하는 순간 대화 자체가 끝나게 된다”고 토로했다.

미국 내 외국인 유학생들이 ‘H-1B’ 비자 강화 정책 여파로 취업난을 겪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력·전공·경력과 무관하게 기업들이 모집 공고 단계에서부터 ‘H-1B 비자 후원 불가’ 방침을 밝히면서, 서류 전형에서부터 탈락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사진=AFP)


학생 취업사이트 핸드셰이크에 따르면 H-1B 비자 후원을 제공하는 정규직 구인 공고 비중은 2023년 10.9%에서 올해 1.9%로 쪼그라들었다. 특히 기술 분야에서 지난해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 가장 큰 폭의 감소세를 보였다.

이에 따라 외국인 유학생들의 지원서가 자동 탈락되는 사례도 급증했다. 미 국제교육연구소(IIE)에 따르면 현재 미국 대학에 재학중인 유학생은 110만명에 달한다.

또다른 인도 유학생 프리트 차칼라시야는 빅데이터 분석 석사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2023년 샌디에이고 주립대학교에 입학했다. 작년 여름 고펀드미에서 인턴십 경험이 있는 그는 올해 5월 졸업 후 500개가 넘는 일자리에 지원했다.

차칼라시야는 “4년 전 형은 너무나도 쉽게 취업했다. 100곳 넘게 지원하는 일은 없을 거라 했는데 너무 다른 현실”이라며 “사람들이 왜 아직도 미국에 오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일자리)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이러한 변화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이민정책 전반이 강화한 영향이다. 고용주가 H-1B 비자를 신규 신청하는 경우 10만달러의 고액 수수료가 신설됐다. 미국인 일자리 보호하겠다는 명분이다.

테일러 로저스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은 ‘아메리카 퍼스트’ 실현 약속을 이행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번 조치는 기업들이 H-1B 제도를 남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외국인 노동자가 미국인 임금을 깎아내리는 것을 막는다. 또 고숙련 인력이 필요하지만 (다른 기업들의) 시스템 남용으로 못했던 기업에는 (채용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심어준다”고 강조했다.

미국 H-1B 비자의 연간 할당 인원은 총 8만 5000명이다. 이 가운데 6만 5000명은 일반 쿼터이며, 나머지 2만명은 미국 석사 이상 학위 소지자 전용 쿼터다. 출신 국가별로 살펴보면 인도 유학생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지난해 상위 10개국 H-1B 비자 소지자는 총 35만 7925명으로, 인도(28만 3397명)가 79.2%를 차지했다. 다음으론 중국(4만 6680명·13%), 필리핀(5248명·1.5%), 캐나다(4222명·1.2%), 한국(3983명·1.1%), 멕시코(3333명·0.93%), 대만(3099명·0.87%) 등이 뒤를 이었다.

미 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들은 10만달러 수수료 부과 조치가 취업시장을 위축시키고 숙련 인력 유입을 차단할 것이라고 우려하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백악관은 “최근 외국인 졸업생과 이미 미국 내에서 학생 비자로 체류 중인 일부 근로자에 대해서는 신규 수수료를 면제한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선 비용·절차상 불확실성 등으로 기업들의 외국인 신규 채용이 사실상 멈추거나 대폭 위축됐다. 실리콘밸리 대기업이나 컨설팅·바이오 산업에까지 비자 후원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실제로 미 최대 민간 고용주인 월마트는 H-1B 비자가 필요한 지원자에 대한 채용을 잠정 중단했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등 H-1B 활용도가 높은 빅테크 역시 정책 혼선에 신입 채용을 한시적으로 조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 기술, 연구, 컨설팅 등 화이트칼라 일자리는 인공지능(AI) 도입에 따른 인력 감축으로 미국인들도 취업이 어려운 상황이다. 22~27세 대졸생 실업률은 올해 4월 5.8%로 202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카네기멜론대 직업·전문성 개발센터의 케빈 콜린스 부소장은 “기업들이 현 시점에선 채용 자체에 적극적이지 않다. 특히 비자 후원이 필요한 유학생들은 (미국인 졸업생들보다) 더 큰 (심리적) 압박을 받고 있으며,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일자리에 지원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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